광복절에 만나는 ‘민족시인 정인보’

2012. 8. 13. 14:11내고향강진의 향기

 

▲  광복 직후(1945. 11. 22.) 순국선열 유해 봉환 시 백범 김구 선생과 함 께 한 위당 정인보 선생(김구 선생 뒤편 오른 첫 번째), 이때 위당이 지은 <봉영사(奉迎辭)>와 <순국선열추도문>은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절에 만나는 ‘민족시인 정인보’

- 17일 오후 3시 시문학파기념관, 유족 참석…선생의 조국애․인간미 생생히 전달 -

- 문학강연․가곡․대표작 감상 등 프로그램 다채 -

 


제67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민족시인’ 정인보 선생(1893~1950 납북)의 지사적 삶과 문학정신을 되새기는 뜻 깊은 문학행사가 강진에서 열린다.


강진 시문학파기념관이 ‘8월의 시문학파 동인’으로 위당 정인보 시인을 선정하고, 오는 17일 오후 3시 시문학파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어둠의 시기 겨레에 등불을 밝히다’란 주제로 문학강연이 열린다.


이날 강연에서는 위당 시인의 3녀 정양완 교수(한국정신문화원)를 비롯해 정양모(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인의 4남),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시인의 셋째 사위), 손자 등이 참석, 그동안 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위당 정인보 시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전달하게 된다.

위당 정인보 선생은 1893년 서울에서 명문가의 외아들로 태어나 한학자 이건방에게 사사한 후 1913년 상해로 건너가 박은식․ 신규식 등과 동제사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 멤버로 참여해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김현구 등과 1930년대 한국시단을 이끌었던 민족 시인이다.


특히 일본 강점기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해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 국학대학 초대학장을 지내면서 <광복절 노래>, <개천절 노래>, <3․1절 노래> 등을 지어 민족의 얼을 되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정양완 교수는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꺼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7남매의 아버지를 넘어 조국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의 올곧은 스승으로 기억되는 분”이라며, “3․1절 노래를 비롯해 개천절․ 광복절․ 제헌절 노래 등 우리나라 4대 명절의 노래와 각 중․ 고등․ 대학교의 교가를 지어서 젊은이들에게 겨레의 얼을 심어주셨던 민족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정 교수는 “이번 강진에서의 강연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위당 선생과 관련한 야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생각이다”면서, “특히 광복절을 즈음하여 아버지의 삶과 예술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한 강진군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선기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학예실장은 “매월 시문학파 동인 한 분씩을 선정해 진행하고 있는 ‘이달의 시문학파 동인’ 행사는 시문학파의 문학사적 위상정립과 문학을 통해 지역민과의 소통을 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면서, “특히 위당 선생의 두 자녀와 사위 등이 참석하는 이달의 행사는 위당의 문학적 원형질과 그의 인간미를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월에 개관한 강진 시문학파기념관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친필 한시와 <광복절 노래>, <개천절 노래>, <3․1절 노래>의 육필원고와 저서, 사진물 등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