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8. 16:29ㆍ브랜드스토리
구찌 브랜드 스토리
회 사 명 : 구찌그룹코리아
대 표 자 : 월리암윤
창 립 일 : 1998년 5월 1일
주 소 : 서울 강남구 청담동 99-15 구찌빌딩 3층
런칭년도 : 1995년
복 종 : 수입명품
조 닝 : 남,여토틀
전개형태 : 직진출브랜드
도 입 국 : 이탈리아
컨 셉 : 페미닌과 섹시함, 우아함과 샤프함, 자신감 넘치는 스타일과 신비로움의 상되는 요소가 쿨한 애티튜드로 전개됨
가 격 대 : 수트 : 2,500,000원 핸드백 : 850,000 ~ 6,500,000원 슈즈 : 450,000 ~ 1,000,000 원 액세서리 : 100,000 ~ 650,000원
수많은 명품 중에서 우리나라 젊은이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명품 브랜드는? 바로 구찌! 이미 2년 전,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그 명성을 따라올 브랜드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구찌 제품 중에서도 '구찌백'은 젊은 여성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제품이라고. 구찌가 대중적으로 깊이 파고든 것은 90년대 중반, 젊은 미국 디자이너 톰 포드를 영입하면서부터. 톰 포드가 선보인 구찌 컬렉션은 전통을 고수하는 대신 가장 현대적인 섹슈얼리티를 추구, 패션계는 이에 열광했다. 가슴을 깊게 드러낸 남성풍 슈트, 광택을 내는 트렌치코트 등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패션의 유산에 혁명을 일으킨 것. 그 바람은 살랑살랑 우리나라에까지 시나브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여전히 미풍이 남아 구찌의 향기를 풍기고 있으니, 향기의 유효기간은 어느 정도일지.
작은 지갑에서 구두, 향수와 시계, 남자와 여자의 옷까지 모든 럭셔리 상품을 장식하고 있는 이니셜 '더블 G'. 누가 말했던가. "男兒二十 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 남자나이 20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이면, 後世誰稱 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리오" 라고. 그렇다면 전세계 패션을 장악해 버린 구찌는 뭐라 칭하는 것이 좋을까.
구사일생 구찌 스토리
Karl Lagerfeld로 인한 Chanel의 멋진 컴백처럼 Gucci 역시 Tom Ford로 인해 화려한 컴백이 가능했다. 1994년 Tom Ford가 creative director로 채택되기 이전의 구찌는 파산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족간의 불화와 세금회피로 인한 가족들의 투옥 등이 그 원인. 게다가 1998년 3월, 마지막 구찌의 남자 상속작인 Maurizio Gucci가 이혼 전의 부인에게 살해되면서 그 스캔들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가족간의 치열한 투쟁은 구찌 상속권에 있어서도 늘 공존했고 매우 복잡한 상황으로 얽혀들어가기도 했다.
공예가의 아들로 태어난 구찌의 창시자 Guccio Gucci도 어린 나이에 형제간의 불화때문에 그의 나라인 이태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가서 Savoy Hotel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항시 귀족 고객들의 트렁크와 모자를 보관하는 가방들에 둘러쌓여 있었고 그것이 그의 사업 아이템이 되었다. 사치스런 가족제품 사업을 시작할 것을 결심한 것. 구찌는 플로렌스로 돌아가 1920년, 그의 첫번재 샾을 열었다. 가죽제품과 승마(기수)를 위한 액세서리는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따라서 그는 그의 사업을 미국에까지 확장시켰다. 어느덧 그의 사업은 곧 "부wealth"로 통했고 50년대와 60년대의 허식을 상징하였다. 당시 구찌의 고객은 영화스타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소피아 로렌은 물론 미국배우 베티 데이비스 등이 구찌의 단골이 되면서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 마리아 칼라스 등이 모두 구찌의 애호가. 그 유명한 빨강과 녹색 줄무늬 로고로 장식된 대나무 손잡이 핸드백, 꽃무늬 스카프, 뒤축이 없는 신발 등과 같은 것들은 이미 고전적인 작품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가족의 투쟁과 법적 문제로 인한 여러가지 원인으로 구찌는 그 명성을 잃어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4년, 구찌는 대부분의 직원들을 해고시키고 studio assistance인 36살의 Tom Ford를 creative director로 승진시키는 데 복덩이를 잘 알아본 것이었다. 산타페가 고향인 Tom Ford는 TV광고모델로 활동하기 전까지 뉴욕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후에 뉴욕의 파슨즈 디자인 학교에서 인테리어와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는 80년대 후반을 디자이너 Cathy Hardwick과 Perry Ellis를 위해 일하면서 보냈으며 1990년 구찌팀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그는 에이즈를 하나의 큰 문제로 안고 있는 사회의 타락성과 음란성을 주제로 구찌의 케케묵은 이미지를 탈피하게 하는데 성공. 그의 벨벳 힙스터 바지는 90년대의 이중적 성윤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금속성의 가늘고 높은 힐은 우리의 이미지를 날카롭게 하고 발을 멍들게 하면서도, 동시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돈"보다 더 섹시한 것은 없다는 것을 현실화시킨 일등 공신. 파산해가는 구찌를 옛 명성의 자리에 올려놓은 데다가 "돈"의 매력까지 현실적으로 일깨워 준 그의 노고에 구찌는 백번 절해도 모자라지 않을까. 그를 잡지 못했다면 현재의 구찌는 어쩌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편, Ford의 골반 위에 위치하게 되는, 진홍색으로 "G" 라고 박아넣은 가죽끈은 2,000프랑이나 되는 꼬리표(tag)이다. 그 꼬리표 하나만 있으면 당분간은 걱정이 없을 것 같다. Tom Ford의 목표는 사업과 창조족인 디자인의 완벽한 중매인으로서,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는 것. 또한 그는 한 시즌에 label을 대표하는 하나 또는 두 개의 지배적인 스타일(looks)만을 내세움으로써"editing" 컬렉션을 유행시켰다.
세계를 평정한 스타일
1913년, 구찌오 구찌가 피렌체에 고급피혁 제품점을 오픈했다. 더블 G 마크가 붙은 캔버스와 빨간색과 그린색 조화 워브라인등을 발표,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됐는데 거기에는 끈질긴 장인 정신과 일상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크리에이티브, 뛰어난 품질을 위한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가지는 명품이라면 지녀야할 필수 요소. 그리고 동시에'GUCCI'의 신화를 일으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과 인내 끝에 구찌는 1953년 해외 매장의 성공적인 진입과 함께, 세계 유명 인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명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GUCCI'의 이름 뒤에는 1백년 전통이라는 수식어와 명품 중의 명품이라는 찬사가 붙고 있다. 덧붙여 'GUCCI'는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클래식한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의 일관성, 현대적 패션과의 조화를 통해 'GUCCI'만의 스타일을 완성,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처음에는 세련된 세공 기술과 최상의 재질로 승마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선보여 귀족 사회에서 인기를 누렸고, 이후 자전거가 상류 사회에 보급되면서 핸드백과 같은 일반 가죽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혼란에 빠뜨린 2차 세계대전 당시, 'GUCCI'는 오히려 새로운 창조와 도약의 시기를 맞았다. 부족한 가죽 제품을 대신한 캔버스천 가방이 역사적인 디자인으로 자리잡으며 'GUCCI'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 2000년 이후에는 수많은 브랜드를 흡수, 디자이너브랜드 알렉산더 매퀸과 스텔라 매카트니, 보석명품 부쉐론, 가죽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등 10여 개의 유명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패션그룹으로 성장했다. 2001년부터는 파리패션의 명가 입생로랑의 기성복라인도 사들여 톰 포드의 디자인으로 컬렉션을 펼치는 중. 현재, 가방을 비롯해서 신발, 의류, 시계와 안경 등의 각종 소품과 보석, 향수, 홈 켈렉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의 제품들. 그들만의 오리지널 컨셉 속에서 여전히 명품의 품위를 지켜 나가고 있는 구찌는 명실상부한 명품계의 선두주자다. 뿌리를 잃지 않는 정통성의 집념, 새로운 정통성에 대한 집념, 새로운 것을 더욱 새롭게 하는 유연함, 최고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은 'GUCCI'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지키며, 세계 패션사에 아름다운 전통을 세우고 있다.
한편, 구찌오 구찌의 컨셉은 "최상의 전통을 최상의 품질로, 그리고 과거의 뛰어난 제품을 현대에 반영시킨 상품 만들기." 품질 보증을 위해 디자이너 이름을 넣어서 판매한 것이 바로 브랜드 상품의 원조이다. 구찌오 구찌가 고안한 자신의 이니셜을 모태로 한 더블G 의 모노그램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런데 밀라노의 'GUCCI'는 지금도 세계의 트랜드 센터이지만 구찌사는 현재 구찌가의 손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태. 브랜드 자체의 정통성은 남아 있지만 기업의 전통성은 끊겼다고 봐야 하나? 어쨌든 현재 구찌그룹 N.V.의 사장 겸 최고책임자는 'GUCCI' 재건의 입안자이기도 한 도메니코 데 소레이다. 산로랑과 세루지오 로시를 매수하는 등, 프라다의 패트릿시오 벨테리와 함께 패션업계를 독점한다는 착각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묘한 파워를 가진 남자. 구찌를 정복했으니 이제 어느 브랜드를 또 정복하려 들까 사뭇 궁금해진다.
국가대표 심볼 구찌
더블 G (Double G)
'GG 마크'라고도 한다. 창시자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의 이니셜을 배열한 'GUCCI'의 심볼마크. 1940년대부터 사용된 이 로고를 기하학적으로 짜넣은 캔버스를 사용한 제품이 'GUCCI'의 대표상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재키 백 (Jackey Bag)
미국 캐네디 대통령의 부인이면서 1950~1960년 대의 패션 리더였던 재키 케네디가 애용했던 'GUCCI'의 메인 백. 클래식하고 모던한 실루엣이 특징. 1999년 재등장한 후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제품이다. 간단하게 'J 백'이라고도 한다.
비트 모카싱 (bit moccasin)
발등 부분이 V자형 가죽조각으로 봉제 된 구두를 모카싱이라 한다. 여기에 호스비트(horse bit : 말의 재갈을 두 개 이은 모양의 금속구)를 붙인 스피폰 슈즈, 대략'GUCCI'의 로퍼를 가르킨다고 해도 무방하다.
르네상스 구찌
구찌 공화국의 르네상스에는 데 졸레, 톰 포드 쌍두마차의 콤비 플레이가 큰 위력을 발휘했다. 데 졸레의 경영전략과 톰 포드의 감각이 결합해 경영자와 아티스트간 절묘한 조화가 이뤄진 것. 두 사람은 '섹스어필' '부' '화려한 매혹'(glamour)이라는 세가지 모토를 구찌의 상품 제작에 적용, 도산 직전의 구찌를 1998년 10억달러, 2000년에는 14억 9,400만달러 매출이란 신화적인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데 졸레, 톰 포드 콤비가 구찌 가문의 분쟁과 경영 실패로 낭떠러지 끝에 섰던 구찌 브랜드를 부흥시킨 것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그동안 세계 패션업계의 체질변화를 주도해 왔다는 점. 그들은 패션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한편, 구찌로서는 또 다른 위기도 있었다. 1999년 크리스찬 디오르, 지방시, 셀린 등 세계 최고급 브랜드 10여개를 가지고 있고 모에 샹동, 헤네시 등 고급 주류회사와 파리의 르봉마르셰 백화점을 거느린 세계 초대 패션그룹 루이뷔통이 구찌를 탐냈던 것. 구찌와 루이 뷔통위 피말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루이 뷔통의 베르나르 아노 회장은 무주공산 상태인 구찌 지분을 비공개로 34.4%까지 확보,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데 졸레는 우리사주 2,000만주를 발행, 물타기를 시도해 이를 막았고 "이탈리아 명품 구찌가 프랑스 아노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대응했다. 이에 루이 뷔통이 우리사주 발행 무효 확인 소송을 내자 데 졸레는 프랑스의 유통재벌 피노 프랭탕 르누트(PPR)그룹에 도움을 청했다. 구찌는 신주 3,700만주를 발행해 PPR로부터 30억달러의 투자유치에 성공, PPR는 이브 생로랑 등을 거느린 미국의 패션기업 사노피사를 사들여 이를 구찌에 되팔았다. 결국 2년 동안 끌어오던 싸움은 지난해 루이 뷔통이 구찌 지분 858만주를 PPR그룹에 넘기면서 종결됐다.
구찌그룹코리아의 출범에 맞추어 지난 2월말 한국을 방문한 데 졸레 회장은, "지난해 한국시장이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 매출에서도 전년대비 44% 성장률을 기록해 일본과 비슷한 성장을 기록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운 아시아 지역에서도 구찌의 저력은 기죽지 않음을 보여준 셈. 바야흐로 구찌의 르네상스 시대이다.
'브랜드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로 브랜드 스토리 (0) | 2011.04.12 |
---|---|
루이비통 브랜드 스토리 (0) | 2011.03.09 |
샤넬 브랜드 스토리 (0) | 2011.03.08 |
크라이슬러 브랜드 스토리 (0) | 2011.03.08 |
프라다 브랜드 스토리 (0) | 2011.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