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찰 남도의 '무위사' 기행

2006. 8. 20. 08:42내고향강진의 향기

천년 고찰 남도의 '무위사' 기행 2006.07.04 16:42
http://paper.cyworld.nate.com/e-BeautifulGangjin/1547059
 
천년 고찰 남도의 '무위사' 기행
무위사는 '남도답사 1번지'를 가장 멋지게 장식하는 유적이다.
남도의 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남서부에 소담스럽게 자리한 무위사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죽전마을 117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무위(無爲)란 불교의 최고선인 무소유와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세속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부정’한 불타의 가르침이 없어도 극락보전이 자리한 무위사는 영원한 진리 세계를 추구하는데 충분히 한적하고 단아한 절이다.

강진 무위사 전경. 극락보전·선각대사편광탑비·3층석탑이 있다.

무위사는 배흘림(긴 타원형) 기둥을 세우고 맞배지붕 형식으로 건축된 극락보전, 보물 제507호인 선각대사편광탑비,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제76호인 삼층석탑이 있으며, 조선 성종 7년(1476)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후불벽화인 아미타삼존벽화(보물 제1313호)와 백의관음도(수월관음도, 보물 제1314호)가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선각대사편광탑비에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렸다는 내용이 있다. 무위사에 관한 기록을 더 살펴보면, 1555년(명종 10) 태감(太甘) 선사가 네 번째 중창하여 무위사라 하였으며 건물이 30여 채, 암자는 35개소였다고 한다. 그 후 화재 등으로 축소되었고, 1974년 벽화보존각·해탈문·분향각·천불전·미륵전 등을 중건하면서 옛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난대림 북방한계선인 월출산 남쪽의 다양한 수목과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무위사지구 자연관찰로는 무위사 경내 후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약 1km의 구간으로 각종 나무와 풀과 이들과 어울려 사는 새와 곤충 등 자연생태계를 관찰하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숲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소리와 향긋한 흙이나 꽃 냄새를 맡으며 자연이 전해주는 느낌을 체험해 볼 수 있다.

■ 해원(解寃)의 집

무위사에 처음 들어서면 사천왕문이 나오는데, 네 명의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다. 사천왕은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신으로서 각각 동서남북을 지키게 된다. 절의 중심 정면에 서서 오가는 방문객들과 세월의 깊이를 재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언제나 의연하고 단아하고 아름답게 서 있다.

하지만 무위사는 아름답기 이전에 우리나라 수천 년의 역사동안 외침과 내환, 뜻하지 않은 재난 등으로 비명에 숨져간 영혼들을 위한 포근한 안식처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억울하고 비통에 가득 찬 가족이나 친지들이 망자들의 극락왕생을 빌거나 염원하는 ‘해원(解寃)’의 장소로서 이 절은 위안과 해탈의 길로 인도하여 주는 장소인 것이다. 나라의 재난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한 무위자연의, 그래서 사찰 이름도 무위사(無爲寺)이고 부처님을 보시는 대웅전도 극락왕생을 비는 ‘극락보전’이라 한다.

이를 고증하듯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7 ‘강진현 불우조’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이제 중수하고 이로 인해 수륙사(水陸社)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아미타여래도 등의 벽화조성 시기 및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 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까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의식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선각대사편광탑비. 신라말 형미 대사가 8년간 머물렀다.
또 ‘선각대사편광탑비’를 보면 남쪽 바다를 향해 여의주를 입에 문 거북이의 장엄한 모습은, 찰나처럼 낙엽처럼 일순간의 삶을 마치고 영원으로 향하는 영혼들을 위해 충분한 위안이 되는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다.

이 거북이의 늠름한 모습은 남해의 왜구와 남도의 재앙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비의 주인공‘형미’대사는 고려 건국 드라마에 나오는 통일신라말의 스님으로 8년간 이 절에 주지로 있었으며, 어려울 때 왕건을 도와준 기록이 있다.

무위사 진입로 좌측으로는 새로 지은 성보박물관과 3층 석탑, 선각대사편광탑비가 있는데 성보박물관에는 극락보전에 그려진 벽화들을 떼어내어 보존하고 있다. 무위사 3층석탑은 월남사지 3층석탑과 양식 면에서 대비되는 신라계 석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각대사편광탑비 뒤로는 산신각과 민불을 모신 제각이 있는데, 여기 민불의 모습은 친근하면서도 듬직하고 선한 모습을 하고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석불로 폐찰된 인근 수암사 민불로 전해진다.

■ 무위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 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로, 국보 제13호로 지정된 정면 3칸·측면 3칸의 목조 건축물이다. 이 극락전은 1983년 옥개부 해체 보수시 중앙간 종도리 장혈에서 ‘선덕오년’이란 묵서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건물이 세종 12년(1430) 효령대군 등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극락보전이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들의 안락과 수명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인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좌우에는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로써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과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이끄는 지장보살을 배치하였다.

극락보전의 처마와 단청. 배흘림기둥과 노란색 단청.
목조 건물은 제각기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무위사 극락보전은 목조건물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건물은 알맞은 평면구성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목조끼리 짜 맞춘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의 가구(架構)를 짰는데 그 기법이 고려시대 양식보다 세련미가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엄숙함이 있으면서 조선 초기 건물에서 보이는 단아한 맛이 살아있는 보기 드문 건물이다. 호남지방 특유의 길게 늘어진 기와 건물의 멋을 잘 지녔다. 어간보다 협간의 간살이가 더 넓다.

간살이에 비하여 기둥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짧은데 그렇다고 낮아 보이지도 않는다. 등이 약간 휘어진 맞배지붕의 물매가 주는 인상도 한 몫하는 듯 하다. 넓은 간살이와 기품 있어 보이는 지붕 높이의 조화가 입면관을 단정한 위엄이 있으면서도 안정되어 보이게 한다. 이 건물은 이른바 백제계 건물류에 속한다.

■ 무위사 벽화

무위사 극락보전은 벽화로서 유명한데 ‘아미타삼존불’은 4각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를 하고, 관음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불화로서 매우 희귀한 걸작 예술품이다. ‘백의관음도’는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진 벽의 뒷면에 그려진 불화로서 넓적한 얼굴, 굵은 목, 넓은 어깨 등 건장한 남성적 요소가 여실하다.

극락보전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올해 완성한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벽화 아랫부분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이 그림은 아산현감을 지낸 강노지 등 여러 사람의 시주로 대선사 혜련(海連) 등이 그렸고 성종 7년(1476)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미타 삼존벽화’와 ‘백의관음도’는 두루마리가 아닌 토벽의 붙박이 벽화로 그려진 가장 오래 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한 고려 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무위사 벽화 이래로 고려 불화의 전통을 잃게 되고 우리가 대부분의 절집에서 볼 수 있는 후불탱화들은 모두 임란 이후인 18-19세기의 것이니 기법과 분위기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조선의 불화답게 고려 불화의 엄격한 상하 2단 구도를 포기하고 화면을 꽉 채우는 원형구도로 바꾸었다. 고려 불화라면 협시보살로 설정한 관음과 지장보살을 아미타여래 무릎 아래로 그려 엄격한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 부처의 권위를 극대화 시켰겠지만 무위사의 벽화는 협시보살이 양옆에 서고 그 위로는 나한상이 구름 속에 싸이면서 부처님을 중심으로 친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답사를 마치며

이러한 무위사의 극락보전과 3층석탑, 선각대사편광탑비, 후불벽화 등에서 풍기는 사찰 전체의 이미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경주 불국사가 신라시대의 웅장하고 남성적인 면이 강한 절이라면 강진 무위사는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미가 돋보이는 절이다. 특히 선각대사편광탑비는 조각예술로서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있다. 거북의 코와 발톱, 꼬리부분은 약간 훼손되었으나 그 웅장함이나 섬세 유려함은 무위사를 지켜 온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무위사는 광주광역시 방면에서 나주 영암을 거쳐 강진에 이르는 방법과 서해안고속도로 목포에서 영암을 거쳐 강진에 도착하는 방법, 순천에서 보성 장흥을 거쳐 강진 성전면 무위사를 찾는 방법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무위사 주변 볼거리로는 태평양 녹차밭, 경포대 계곡, 월출산, 영암 도갑사와 인근 만덕산의 백련사, 해남군의 대흥사와 미황사도 들러 볼만하다. 남도 어디를 가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자연환경 속에 무궁무진한 조상들의 숨결과 얼이 잠들어 있다. 온고이지신이라 했던가, 우리는 옛것을 통해 현재의 삶과 미래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정넷포터 박주익 (cheongja@yahoo.co.kr)

※ 국정넷포터가 쓴 글은 정부 및 국정홍보처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등록일 : 200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