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0. 08:41ㆍ내고향강진의 향기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
살인사건 실무처리서
조선시대의 과학수사를 논하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1762~1836)의 『흠흠신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흠흠신서』는 정약용이 유배돼 있을 동안 『증수무원록』을 토대로 저작한 책이다. 당시의 제도는 목민관이 입법ㆍ사법ㆍ행정의 삼권을 온통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억울하게 죽게 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 정약용의 목적이었다.
법의학·형사적 측면까지 포괄
그러므로 『흠흠신서』의 내용을 요즘의 법률적 논리로 본다면 형법과 형사소송법 상의 살인 사건에 대한 형사소추에 관한 절차나 전개과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박석무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법률적 접근만 다룬 것이 아니라, 법의학적ㆍ형사적인 측면을 포괄하고 있으며 사건의 조사와 시체 검험 등 과학적인 접근까지 상세하게 다뤘다.
생명에 관한 범죄는 조심스럽고 성실하게 공정히 처리해야하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고 치밀한 조사ㆍ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정약용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2년이나 감옥에 있었던 사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정조 23년(1799) 4월, 정조는 정약용을 형조참의에 임명하고 이미 확정 판결된 것들을 포함해 전국의 형사사건을 모두 회계(回啓)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정조가 직접 함봉련 사건에 의문의 꼬투리가 있으니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다.
사건은 평창의 나졸 모갑(某甲)이 환곡을 독촉하러 김태명의 집에 가서 송아지를 끌고 가다가 길에서 김태명을 만난 것에서 시작한다. 김태명이 송아지를 도로 빼앗으려다가 서로 싸움이 일어났고 모갑의 배를 짚고 무릎으로 가슴을 짓찧은 후 송아지를 데리고 가다가 길에서 땔감을 지고 돌아오는 함봉련을 만났다.
함봉련은 김태명 일가 사람의 머슴이었다. 김태명은 함봉련에게 모갑을 가리키며 그가 자신의 송아지를 훔친 사람이니 혼을 내주라고 했다. 함봉련은 지게를 진 채 모갑의 등을 떼밀었는데 그가 밭 사이에 넘어졌다가 곧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모갑이 집에서 피를 토해내자 아내에게 “나를 죽인 자는 김태명이니 복수하라”고 한 후 죽었다.
아내가 그의 말대로 고발했고 초검과 시체검험서에서 가슴 한 곳이 검붉고 딱딱하며 둘레는 3촌 7푼이고 코와 입이 피로 막힌 것 외에는 별로 다친 자국이 없어서 죽은 원인으로 맞아 죽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주범을 함봉련, 목격한 증인을 김태명으로 했고 증인들이 모두 함봉련이 밀어서 사망한 것이라고 적었다. 재검도 같은 취지였다.
정약용은 이 사건이 대표적으로 거짓 진술에 의한 오판임을 지적했다. 우선 형사 사건을 판결함에 있어 세 가지 근거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적었다. 첫째 유족의 진술, 둘째 시체검험서의 증거, 셋째는 공변된 증언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약용은 시체검험서의 다친 자국과 유족의 진술이 서로 일치해 부합함에도 오로지 범인의 꾸며낸 말을 믿고 주범을 바꾸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시체검험서로 보면 가슴인데 가슴을 짓찧은 자는 김태명의 무릎이며 함봉련은 단지 손바닥으로 등을 떼밀었다고 했는데 등에는 다친 자국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김태명은 주범으로 고발당한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목격자로 삼았으므로 함봉련에게 올바른 증언을 하지 않았다. 다른 증인들도 함봉련이 김태명과 관련되는 머슴이므로 김태명을 응원했다고 밝혔다. 정조는 그의 보고서를 받자마자 곧바로 함봉련을 석방하고 김태명을 체포하여 사형에서 한 등급을 줄여 조사 처리하도록 한 후 함봉련에 대한 원래의 사건 문서를 모두 태워 없애도록 지시했다.
여기에서 정조가 10여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인명을 다루는 사건인 경우 의심스러운 것은 함부로 결재하지 않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정약용이 함봉련의 무고함을 밝히자 곧바로 석방하라고 지시했음을 알 수 있다.
무죄 판결땐 관련서류도 모두 없애
특히 함봉련에 대한 원래의 사건 문서를 태워 없애라고 한 것은 무죄를 받은 사람의 경우 관청에 서류조차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죄 없는 사람에 대한 서류가 남는 것조차 부당한 대우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정약용은 살인사건의 경우 범인이 판결할 때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려서 고의성이 없을 경우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조 22년(1798) 황주의 엿장수인 선착실이 모갑(某甲)을 살해했다고 재판을 받았다.
모갑이 외상으로 엿 두 개를 먹었는데 갚지 않자 연말이 되어 그 집으로 찾아가 독촉하니 모갑이 갚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말다툼이 벌어져 선착실이 손으로 모갑을 떼밀었는데 마침 등 뒤에 넘어져 있던 지게뿔이 모갑의 항문에 바로 맞히면서 위로 배를 찔려 사망한 것이다.
고의성 없을 경우엔 정상참작
모두들 죄수가 두 닢의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으니 반드시 용서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정약용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지게뿔이란 본래 곧고 예리하지 않으며 사람의 항문은 은밀한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찔려서 죽었다는 것은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선착실에게 비록 사람을 떼민 죄는 있으나 사람을 죽일 마음은 없었다는 것이다. 왕도 그의 뜻에 따라 정상을 참작하여 선착실을 석방하도록 지시했다.
따라서 정약용의 『흠흠신서』를 가리켜 일부 학자들은 ‘우리 법제사상 최초의 율학연구서이며, 동시에 살인사건 심리 실무지침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정약용 사후에 『흠흠신서』는 대량 인쇄되어 목민관들의 지침서로 활용되었고 조선 후기에 벌어진 각종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는데 일조했다.
『흠흠신서』는 조선의 근대 이전시기, 법의학서의 길잡이가 되었고 특히 정조가 이를 토대로 하여 인권을 중시하고 죄인의 형벌에 공정성을 기약하려 노력했다고 인식하므로 더욱 중요성이 높아진다.
〈과학수사의 현주소〉
필자가 고대의 과학수사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하자 독자들이 조선시대 수사기법에 부연하여 현대 과학수사 기법을 연계하여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근래의 첨단 과학수사 기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현대의 수사기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다. 범인의 지능이 높아지고 수사관들을 속이는 방법이 고차원화 되었기 때문에 수사관들도 이에 못지않은 대응책을 강구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범인과 수사관의 싸움으로 변한다. 범인은 범행이 탄로 나지 않도록 각종 대비책을 마련하고 수사관은 신속한 시간 내에 범인을 체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범인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각종 위장 방법을 강구한 범인이라면 범행을 자인시키기란 쉬운 방법이 아니다. 소위 범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 가는 것인데 수사물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도 머리 좋은 범인과 수사관 또는 탐정과의 머리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수사관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범인의 거짓말을 조목조목 명쾌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샤론 스톤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그녀는 형사들의 신문 도중 담배를 피면서 뇌쇄적인 ‘다리를 꼬는’ 자세를 취했다. 영화에서는 명장면으로 끝났지만 유능한 범죄 심리학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샤론 스톤의 거짓말을 명쾌하게 가려냈을 것이라고 수사 전문가는 지적한다. 이야기할 때 다리를 꼬는 것은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행동이나 대화 통해 진실·거짓 판단 가능
범죄심리학에서는 범죄인들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범인들이 거짓말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토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쟁이가 워낙 똑똑하여 거짓말을 감추고 진실 행동만 한다면 수사관을 멋지게 속여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머리 좋은 과학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기계적인 방법으로 거짓말쟁이를 찾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 기계를 만들어 냈다. 바로 ‘거짓말탐지기’이다.
2004년부터 ‘거짓말탐지기’라는 용어가 인간존엄을 해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심리생리검사기’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거짓말탐지기’로 기술한다.
거짓말탐지기의 이론적인 배경은 죄를 지은 사람은 거짓말이 탄로날까 봐 두려워하므로 가슴이 부풀며 호흡이 빨라지고 침을 자주 삼킨다거나 땀을 흘리는 등 생리적인 변화를 보인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거짓말탐지기는 범인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도덕성이나 죄책감 같은 것을 검사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이 탄로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탐지하는 것이다.
거짓말탐지기가 정말로 정확한가? 1978년 한 자료에 의하면 거짓말탐지기의 신뢰도는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보 검사관은 79%의 정확도에 비해 경험 많은 검사관은 91.4%의 정확도를 보였다. 이것은 거짓말탐지기에 의할 경우 20%에서 10%의 오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오차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나오게 함은 물론이다.
거짓말 탐지기 찬반 논란
바로 이런 문제점 때문에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는 것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찬성하는 측은 ‘거짓말탐지기를 속일 가능성은 배심원을 속일 가능성만큼이나 작다’는데 근거한다. 더구나 목격자들의 증언이 대체로 거짓말탐지기보다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도 큰 힘이 된다. 더욱이 거짓말탐지기를 찬성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한다고 하면 용의자로 하여금 자백하게 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반대측의 주장은 거짓말탐지기의 잘못된 검사로 상당수의 정직한 사람들이 거짓말로 낙인찍히고 있다는 점이다(미국의 경우 매년 50만 명 이상). 특히 돈에 관계되는 증권 거래의 경우 내부자 거래 수사에서 아무 문제없이 탐지기를 통과한 일부 투자 은행가들이 나중 수사에서 내부자 거래에 협조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스라엘에서 21명의 경찰관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들은 ‘적성검사’라는 명목으로 필기시험을 치렀고 자신의 답안지를 직접 채점하도록 했다. 답안지에는 부정행위를 잡아낼 수 있도록 화학처리가 됐고 21명 가운데 7명이 처음에 쓴 답을 고쳐서 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자백한 3명과 검사를 거절한 부정행위자 2명을 제외하고 탐지기는 2명의 부정행위자를 밝혀냈다. 하지만 결백한 용의자 두 명도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탐지기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으로 거짓말탐지기의 신용이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미국 레이건의 행정부에서 일어났다.
레이건 행정부는 백악관 내부에서 뉴욕타임스에 정보를 흘린 내부자를 찾기 위해 백악관 보좌관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했다. 이때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두 번씩이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모든 정황이 그에게 불리해지자 그는 자신이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뉴욕타임스의 발행인에게 자신의 결백을 레이건 행정부에 알려달라고 했다. 발행인은 편집장으로부터 그 기사의 정보원은 맥팔레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주었고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결백을 입증 받았다.
<뇌는 주인을 배반>
거짓말탐지기는 조사 대상자의 정서 반응에 의존하므로 엉뚱한 결과가 나올 개연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서 대신에 인지 과정을 이용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뇌안에 숨어있는 유죄정보 추적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라이켄 교수가 제안한 유죄지식검사(Guilty knowledge test)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머리에 범행에 관련된 정보가 저장되어 있으므로 뇌 안을 뒤지면 유죄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범죄를 계획, 실행, 기억하는 것은 뇌이기 때문에 뇌 안에 유죄의 증거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뇌 안에 숨겨진 유죄정보를 어떻게 추적하느냐인데 현재 3가지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첫 번째는 1991년 미국의 로렌스 파웰이 제시한 ‘뇌지문감식’법이다. 피검사자의 머리 위에 10여 개의 미세 전극이 내장된 장치를 씌우고 범죄 장면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뇌파를 검사하는 것이다. 피검사자가 범죄를 부인하더라도 뇌가 주인을 배반해서 범행을 자백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범인을 찾아내는 것보다는 무고한 혐의자를 가려내는데 오히려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1978년 당시 17세의 흑인 소년이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사건이 지난 20년이 지난 다음에 무죄를 받은 적도 있다. 소년의 뇌가 범죄 장면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가 알리바이로 내세우는 음악회 관람과 관련된 문장에 강력히 반응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발한 뇌 영상기술이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뇌를 검사해 거짓말을 할 때 뇌의 여러 부위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따라 진실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기술이다.
세 번째 방법은 뇌지문감식처럼 미세 전극을 사용하지도 않고 MRI처럼 첨단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신뢰성이 높은 방법이다. 단지 질문에 대한 반응시간을 측정해 머릿속의 유죄 지식을 판독해 내는 것이다. 미국의 트래비스 세이머 교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여러 차례 연습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도 2배 가까이 반응이 늦다는 것을 발견했다.
국내에서도 2004년부터 뇌파분석기를 범죄 수사에 도입하여 2년 동안 제자리를 맴돌던 살인사건 용의자를 추정해 내는가 하면, 살인방화범의 범행방법을 밝혀내기도 했다. 최초의 분석 대상이 된 사건은 독극물 연쇄 살해사건이다.
3명이 비슷한 수법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 2003년 발생했는데 수사진은 이렇다 할 증거가 없고 용의자마저 강력히 부인하자 대검 과학수사과에서 용의자를 대상으로 뇌파분석을 시도했다. 검찰은 용의자에게 컴퓨터 모니터로 여러 가지 단어와 사진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보여주었다.
용의자 뇌파, 범행과 밀접하게 반응
수많은 화면 가운데 범행에 사용됐던 독극물이나 범행 장소 주변 건물 등이 지나가자 용의자의 뇌파가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검찰은 그의 뇌파가 범행과 밀접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다른 사건은 2004년 살인방화사건으로 피해자를 방에 가둔 채 불을 질러 목숨을 빼앗은 사건이다. 용의자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용의자에게 현장에서 발견된 도구를 제시하자 용의자의 뇌파가 반응했다.
또 다른 거짓말 탐지 기술은 높은 해상도로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는 열을 감지하는 것이다. 소위 얼굴의 열을 감지하는 사진기술인데,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보다 사용이 훨씬 간편하고 실용적인 것이 특징인데다 83%에 이르는 정확도로 범인을 색출했다(범죄인 확인 75%, 무죄확인 90%).
이 기술의 핵심은 대부분 강도의 상기된 얼굴은 유죄의 증거라는 사실에 근거한 기술이다. 특히 범인의 눈 주위에 나타나는 열은 원초적으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공포-도주’ 반응이라고 한다. 이런 얼굴의 열상은 거짓말이나 충격을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서 얼굴의 혈관이 느슨해지기 때문일 것으로 과학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과학수사의 총아 DNA>
혈액형과 마찬가지로 현대과학수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수사 기법 중에 하나는 DNA지문 분석이다.
1983년 영국의 앤더비에서 15세의 한 소녀가 강간을 당하고 목 졸려 죽었으며 3년 후에도 인근에서 15세의 소녀가 같은 형태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동일 소행범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으로 추정했지만 확증을 할 수 없었다. 엔더비의 살인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어 17세의 소년이 체포되었고 그는 자신이 살해했다는 자백도 했다.
이때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고 식별하는 DNA 분석법이라는 놀라운 방법이 개발되었다.
유전자 분석법이란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멀리스(Kary B. Mullis)가 발명한 PCR(중합효소 연쇄반응: Polymer chain reaction) 기법을 기초로 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개인의 DNA를 분석할 수 있다. PCR 기법이란 특정 부위의 DNA를 복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제공된 시료를 20회 반복하여 복제하면 약 100만 배까지 늘릴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겨우 세 시간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법이 가능한 것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유전자가 자식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의 절반은 어머니로부터 오고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로부터 온다. 따라서 우리 개인의 대부분의 독특성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조합에서 유래한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생식세포라고 불리는 정자와 난자는 그 절반인 23개의 염색체만 갖고 있어서 자식을 만들려면 서로 다른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서 46개의 염색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의 몸속에서 평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수의 정자는 유전자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 여자의 경우도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배란되는 약 450개의 난자 속에 있는 유전자의 내용이 전부 다르다. 인간이 되기 위해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데 어떤 조합이 이루어질지는 그야말로 우연이라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질 때는 더 복잡한 과정이 일어난다. 46개의 염색체가 그 절반인 23개로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단순하게 무를 칼로 자르듯이 잘라지는 것이 아니라 교차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어머니에게서 온 염색체와 아버지에게서 온 염색체 위에 있는 약 10만 개의 유전자가 쌍을 이루면서 무작위로 섞이는 것이다. 이것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 부모로부터 223x23즉, 약 70조 명의 자식이 태어나더라도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한 부모 사이에 태어난 자식의 경우에도 이와 같이 달라지는데 다른 부모를 둔 경우에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DNA분석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을 안 영국경찰은 살해된 희생자들에게서 발견된 잔존물과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소년의 DNA 표본을 비교한 결과 다르게 나타나자 소년이 범인이라고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었다. DNA 감식법에 의해 혐의를 벗은 최초의 인물이 된 것이다.
이후 범죄수사에 지문과 함께 DNA 지문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987년 11월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성범죄에서 DNA 지문법을 적용, 범인에게 22년의 징역형 선고를 내리게 한 것이 최초였다. 이후 캐나다에서는 1989년 4월, 연금을 받는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발생한 연속 강간사건에서 용의자의 혈액과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의 DNA형을 분석 대조한 것이 최초이다.
DNA 감식기법 1991년 우리나라 첫 도입
국내에서는 1991년 DNA 감식기법을 도입했다.
1992년 한 동네 길가에서 혼자 놀던 L양(8살)을 어떤 청년이 부근 공터로 끌고 가 강제 추행하고 도주했다. 경찰은 현장 감식을 실시했지만 현장에는 신문지 조각만 발견되었고 다른 증거물은 없었다. 당시 신문지에는 끈적거리는 물질이 묻어 있었는데 사람의 정액이었고 혈액형은 AB형이었다.
경찰은 사건발생 이틀 만에 외판원 C씨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그의 혈액형은 AB형이었지만 C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한국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신문지에 묻는 정액 증거물과 용의자 C씨의 혈액으로부터 각각 유전자를 분석했고 두 시료는 동일 인물임이 증명되었다. 결국 용의자 C씨는 범행을 완전히 자백했고 이 사건은 유전자 분석을 통한 국내 최초의 범인 검거 사례였다고 최상규 박사는 말했다.
대형 인명피해 사고 신원확인 큰 공헌
그 후 강력사건은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 괌에서 일어난 항공기 추락사고(1997), 화성씨랜드 화재사고(1999),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 등 대규모 인명피해 사건에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등 DNA 지문법은 사회에 큰 공헌을 해 왔다.
이와 같은 유전자 검색이 가능한 것은 대부분의 범죄 상황에서는 언제나 분석 가능한 혈흔, 강간범의 정자, 혹은 머리카락이나 피부 조직 등이 남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수사 당국은 만약 범인이 DNA 지문 감식이 가능한 몇 올의 머리카락, 혈액, 정액, 타액, 오줌 혹은 다른 조직들을 남겨 놓았다면 그들이 누구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 이는 길가에 함부로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3개 주(州)에서 적어도 25명 이상의 여성을 강간한 클라렌스 윌리암은 32년 전인 1973년 피해자인 여성의 속옷에 남긴 자신의 DNA 때문에 체포됐다. 이 사건은 그동안 꾸준히 모아온 DNA 데이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고 32년이나 흐른 뒤에도 DNA검사를 통해 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첨단과학수사를 이기려는 두뇌는 어느 일도 성공할 수 있다>
영화 등 추리물에서 범인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추리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은 장갑을 끼고 있는 장면만 보고도 그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이다. 장갑을 끼는 것은 지문을 없애기 위한 전단계로 여겨지는데 이제 그런 방법도 현대 과학에는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범행에 사용된 장갑, 의류 등에서도 지문을 찾아낼 수 있는 레이저장비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땀과 같은 분비물에는 리보플라빈 등 몇 가지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성분이 묻은 섬유에 레이저 광선을 통하면 지문 형태가 나타난다.
지문·혈액 흔적 지워도 찾아낼 수 있어
만약 범인이 사건현장에 남긴 혈액 자국을 모두 물로 닦아냈다면 어떻게 될까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를 집에서 살해한 후 피를 모두 닦아내고 나서 시체를 옮겨 길거리 도로표지판에 묶어두어도 수사진들은 찾아낼 수 있다.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위안부로 생활하는 Y양이 흉기로 이마부위를 맞아 사망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미군 M일병으로부터 직접적인 증거물을 찾지 못했고 그가 입었던 남방과 바지는 이미 세탁된 후였다. 육안으로는 혈흔이 식별되지 않자 루미놀(Luminol) 용액을 옷에 분무했다. 남방에서 미량의 희석된 혈흔이 검출되었고 피해자와 동일한 혈액형이었다. 루미놀은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는 1만 배 희석된 혈액 성분과 접촉되더라도 강한 형광의 빛을 발산한다. TV 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약이다.
마약수사는 첨단 장비로 더욱 활기를 띤다. 2002년 유명 남자연예인 K씨가 마약을 복용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어 소변검사를 실시했지만 마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K씨의 모발을 검사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그가 머리를 삭발하고 다녔기 때문에 머리털을 채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변의 경우 마약성분이 3~4일이면 배설돼 버리지만 머리카락 등 체모에는 6개월에서 1년까지 잔존한다. 모발의 뿌리인 모근까지 퍼진 모세혈관을 통해 마약성분이 모발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K씨가 약간의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수염을 채취하여 분석했다. 결국 엑스터시 양성반응이 나와 K씨는 마약을 복용했다고 자백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마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소변검사의 한계성을 잘 알고 있으므로 시간이 경과한 경우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나 최근 개발된 모발감식법은 그들의 거짓 주장을 낱낱이 벗겨내고 있다.
죄를 지은 범인의 거짓말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항상 폭로된다는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거짓말쟁이는 매우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 사람은 누구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를 항상 외어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거짓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과장하거나 불리하게 말해 올 때라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발설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짓말 발달 할수록 수사기법도 발전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거짓말한 사실을 일일이 기록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기록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공인하는 것이므로 오로지 자신의 기억력에만 의지해야 한다. 그것이 점점 더 큰 거짓말로 비약됨은 물론이다. 결국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현재 검찰과 경찰에서는 수사 과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술조서의 증거 능력이 법정에서 인정되지 않고 강압수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수사 과학화가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그저 피의자의 자백만 받아내서는 기껏 기소를 해봐야 법정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셈이다.
그러나 범인의 지능 즉 거짓말이 발달하면 할수록 과학수사 장비는 물론 수사 기법도 발전한다는 사실은 결국 범인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 수사관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첨단 과학 수사를 이기려는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머리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않겠는가.’ 끝.
『흠흠신서(欽欽新書)』, 정약용의 3대 역작 중에 하나인 이 책은 우리 법제사상 최초의 율학연구서이며, 동시에 ‘살인사건 심리 실무지침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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