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선생 숨결 고스란히… 느긋하게 차 한잔 하시지요
2006. 10. 28. 14:13ㆍ내고향강진의 향기
茶山선생 숨결 고스란히… 느긋하게 차 한잔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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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년을 기거했던 만덕산 다산초당에서는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건물들은 근래에 복원·신축한 것이지만 다산이 직접 ‘丁石(정석)’이라고 새긴 바위,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반석 ‘다조’, 초당 앞 연못에서는 다산 선생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난다.
또 만덕산은 차나무가 지천으로 자생하는 말 그대로 ‘다산’이다. 기실 정약용 선생도 다산이라는 자신의 호를 차나무가 많기로 이름난 만덕산의 옛 이름에서 따 왔다.
만덕산의 다산초당과 인접한 백련사, 그리고 두 곳을 오가는 오솔길은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남도 답사 1번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강진 여행지 중에서도 백미다. 당시 다산 선생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동시에 강진의 명물인 차 향기에 흠뻑 빠져 두 다산을 두루 느껴볼 수 있는 답사 코스다.
◇다산초당 천일각에서 바라본 강진만 |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은 800m.
600m는 오르막길, 200m는 내리막길이지만, 올라가는 길도 험하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백련사에 닿는다. 얼마 전 강진군에서 가파른 곳에 나무 계단을 설치하는 등 길을 다듬어 놓아 한결 수월하게 다닐 수 있게 됐다.
다산초당에 북적이던 답사객은 대부분 오솔길 초입의 천일각까지만 찾고 발걸음을 돌린다. 아예 이 같은 오솔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되돌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 그래서 천일각부터 백련사까지 걷는 내내 앞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 가뜩이나 호젓한 분위기가 더욱 짙어진다.
천일각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다산초당과 달리 시야가 탁 트인 곳으로, 저술 활동에 매진했던 다산이 바다를 굽어보며 머리를 식혔을 만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978년 세워진 건물이지만, 멀리 보이는 강진만 풍광이 장관이어서 강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곳곳이 차나무이고, 오른편으로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 강진만 앞바다가 줄곧 여행객을 따라붙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 양 옆으로 대나무, 소나무, 두충나무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왼쪽), 백련사 가는 길에서 바라본 강진만. |
오솔길의 풍광만으로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올라온 값을 하지만, 이 길의 유래를 알면 감흥은 한층 더 넘쳐난다.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유일하게 말벗을 삼았던 이가 당대의 학승 혜장 선사다. 혜장은 차에 조예가 깊고 불경은 물론 유교 경전도 통달했던 인물. 혜장이 해남 대흥사의 말사인 백련사에 머물 때 다산은 그에게서 배운 다도에 심취했다. 두 사람은 학문적으로도 교류가 왕성했다. 다산이 백련사의 혜장을 찾아 담론을 벌이고 차를 마시기 위해 오갔던 길이 바로 이 오솔길이다.
다산은 아마도 차의 향기에 젖어, 혹은 곡차에 취해 이 길을 오가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불가의 학승이었던 혜장이 과도한 음주로 일찍 세상을 뜬 사실로 미뤄볼 때, 다산과 혜장은 차와 함께 술도 꽤나 즐겼을 것이라는 게 많은 후세 사람들의 추측이다.
내리막길이 끝나갈 무렵, 왼편에 동백나무 숲이 나타나면 바로 앞이 백련사다.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7000여그루의 동백나무 군락은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동백꽃은 3월 말이 절정이지만, 가을에 보는 기기묘묘하고 울퉁불퉁한 동백나무만으로도 답사객은 흡족해진다.
◇백련사 육화당에서 바라본 강진만(왼쪽), 백련사의 꽃무릇. |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백련사. 고려시대 귀족불교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백련결사 운동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가을이면 빨간 꽃무릇(석산, 돌마늘)이 이 천년 고찰을 에워싼다. 대웅전 건너편 만경루 앞으로는 400년 된 배롱나무가 버티고 서 있고, 그 뒤로는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지 법상 스님에게 말만 잘하면 연꽃 향기가 그윽한 연차도 얻어 마실 수 있다. 백련사 차는 철과 맥반석 성분이 풍부한 만덕산 약수물로 끓여 그 맛이 각별하다는 게 법상 스님의 자랑. 오솔길을 올라 온 다산은 200여년 전 백련사 어느 곳에선가 멀리 구강포(강진만의 옛 이름)를 굽어보며 혜장과 함께 차를 마시며 학문과 세상을 논했을 것이다.
유배기간 중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에게는 백련사와 이 오솔길이 있어 강진이 척박한 유배지만은 아니었으리라.
# 여행정보=강진에는 이 외에도 국보 제13호인 극락보전과 보물 1314호인 수월관음도로 유명한 무위사, 고려청자 도요지와 청자 박물관,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 달마지 농촌 테마 마을, 미항으로 이름난 마량항 등 여행 명소가 널려 있다. 서울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나들목으로 빠져나와 2번 국도로 40분 정도 달리면 강진에 닿는다. 다산초당 진입로에 위치한 다산 유물전시관은 강진 읍내에서 18번 지방도로를 타고 15분 거리.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061) 430-3208
강진=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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