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섬유나 자동차 관세로 빅딜하면 한미FTA는 불평등.굴욕협상"

2006. 10. 31. 14:41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정태인 "섬유나 자동차 관세로 빅딜하면 한미FTA는 불평등.굴욕협상"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27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진행:신율, 방송 저녁 7:05-9:00, FM 98.1Mhz)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이미 4대 선결조건을 받아들인 상태여서 미국과 빅딜을 할 것이 없다"면서 "향후 협상에서 섬유나 자동차 관세는 빅딜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정부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이 이번 한미 FTA 협상이 대단히 불평등하고, 굴욕적이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정 전 비서관은 관세 철폐가 논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관련해서 "관세 철폐는 별 의미가 없으며, 한미FTA의 핵심은 관세가 아니다"고 강조하고, "그런 오해 때문에 웬디 커틀러 대표가 '미국은 13억달러 어치를 양보했는데 한국은 1억달러도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면서 "핵심은 미국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지적재산권, 서비스 분야가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약제비 문제와 관련해 "과거와 달리 포지티브 리스트가 도입되면, 약값 적정화방안을 시행한다고 해도, 약값을 줄이기는커녕 1-3조원 가량 약값이 더 증가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앞으로 약제비 문제는 투자자 정부제소권 등과 함께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진행 : 신율 교수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출연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한미FTA 4차협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이 즉시관세철폐 항목, 그러니까 한미FTA를 맺으면 즉시 관세를 0으로 한다는 것을 금액기준으로는 60%, 품목기준으로는 80% 가까이 늘렸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인데, 그리 큰 의미는 없다. 금액보다 품목이 큰 것은 품목 수는 많이 개방했는데 자동차처럼 시장 비중이 큰 것은 아직 즉시관세철폐 항목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쟁점 분야인 섬유와 자동차에서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우리가 개방하겠다는 수준에 어느 정도 접근시켰다는 건데, 이미 관세가 낮은 미국이 대단히 인색하게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미국 FTA에서 중요한 건 의약품,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 서비스 분야의 미래유보 목록, 투자 분야의 투자자 정부제소권 등인데, 이들 분야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는 차이만 확인했을 뿐 전혀 진전이 없었다. 개성공단 문제도 아예 의제에서 빼겠다는 의사를 미국이 강하게 밝혔다.

- 김종훈 대표는 "미국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에서 한국산 상품에 대한 자국의 관세를 예외 없이 철폐하기로 했었다"고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이 부분은 원래부터 쟁점이 안 된 것인가?

미국FTA의 핵심은 관세가 아니다. 그런 오해 때문에 오늘도 웬디 커틀러 대표가 "미국은 13억 달러어치를 양보했는데 한국은 1억 달러도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FTA의 핵심은 미국기업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적재산권, 서비스 분야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또 수치상으로 관세가 낮아져도 다른 문제 때문에 수출 증대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미 관세가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령 2.5%를 10년에 걸쳐 낮춘다고 하면 1년에 0.25% 떨어지는 게 과연 가격 경쟁력에 도움이 되겠나?

반면 비관세 장벽들이 있다. 예컨대 섬유 분야는 원산지 규정의 문제다. 즉 '어떤 옷이 한국산이냐'를 판단할 때 그 옷을 만드는 데 들어간 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동대문산의 경우 90%는 중국산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관세 철폐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 4차협상에서 의약품과 지적재산권 부분은 어떻게 진행됐나?

특별히 나온 얘기가 없는 걸로 봐선 입장 차이만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의 경우 미국의 혁신신약이 나온 지 20년 지나서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이 나오게 되는데, 그걸 매우 어렵게 하는 조항을 갖고 있다. 미국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예컨대 자료 독점권이라든가 특허와 인가를 연계하는 조항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 정부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2만 2천개의 약품 중 5천개만 포지티브 리스트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과거엔 네거티브 리스트라고 해서 처방하면 안 되는 약 리스트가 있었는데, 이제는 의사들이 처방할 때 리스트에 있는 약만 처방할 수 있다. 그래서 2만 2천개를 5천개로 줄이겠다고 한다면 1만 7천개가 그 리스트에 들어가기 위해 약값 경쟁을 하게 돼서 굉장한 약값 인하 효과가 있을 텐데, 미국은 2만 2천개의 기득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면 약값 적정화 방안을 시행한다고 해도 약값을 줄이기는커녕 1조원~3조 원가량 약값이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야는 앞으로 굉장히 큰 쟁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투자 분야는 투자자 정부제소권이 큰 문제인데.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서 걱정이다.

- 서비스 분야의 미래유보 목록 문제는 어떤 내용인가?

서비스에는 현재유보와 미래유보가 있다. 유보를 시키면 현재의 협상에서는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다. 현재유보라는 건 현재 수준까지는 괜찮다는 것이다. 주제라든가 우리의 복지 수준이 현재 수준에선 괜찮지만 더 강해져선 안 된다는 게 현재유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이 현재유보에 들어간다면 현재 암보험에 대한 보장 30~40%를 50~60%로 늘리는 게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스크린쿼터가 현재유보로 들어가면 현재 73일인 국내영화 상영 규정일을 100일로 늘리는 것도 안 된다. 줄이는 건 되지만 늘리는 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중요한 공공서비스나 문화 분야는 미래유보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이 부분은 절대 미래유보에 못 넣게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주권이나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미래유보에 어떤 것을 넣을지, 그리고 가능한 많이 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 된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전혀 논의도 되지 않고 있다.

- 투자 분야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정부는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 정부제소권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요즘 투자자 정부제소권은 거의 남용 수준이다. 특히 환경 주제는 전부 재소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경우 현재 35건이나 걸려있다. 왜냐면 아르헨티나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긴급조치를 취했는데, 다국적 기업들이 그에 대해 전부 재소를 걸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여기서 지게 되면 GDP의 10%가 한꺼번에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조항이다. 사안마다 국가가 협의해서 해결할 일을 우리나라 사법부도 아닌 제3의 민간기구, 그것도 3명의 변호사가 단심으로 처리하는 제도를 넣는다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특히 북핵이나 외환위기 등 여러 가지 외부적 충격에 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대단히 위험하다.

- 열린우리당 한미FTA 특위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우리 정부는 최혜국대우를 내국민대우의 하위개념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고 있다면 잘못이다. 최혜국대우가 내국민대우의 부분집합이라고 한다면 내국민대우만 집어넣으면 되는데 왜 최혜국대우라는 원칙이 따로 있겠나? 최혜국대우는 가령 미국기업이 일본기업보다 불리한 조건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고, 내국민대우는 한국기업과 같은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미국이 미래와 과거를 구분하지 않았는데 왜 이것을 왜 두는지 생각해보니, 미국이 나프타와 가장 강력한 FTA를 맺었는데, 나프타를 맺을 때 멕시코와 캐나다에 허용한 조건을 한국에 자동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멕시코와 캐나다와의 나프타보다도 더 불리한 조건을 한국에 강요하거나 요구할 수 있도록 과거는 최혜국대우를 적용하지 않고 미래만 적용하겠다고 나온 것 같다. 최혜국대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쟁점이 많다. 아주 강력한 원칙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들은 미리 따로 언명해놓아야 한다. 근데 그것이 내국민대우에 포함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건 FTA를 정확히 못 보고 있는 것이다.

- 4차협상 때 최혜국대우 문제도 별 진전이 없었나?

그렇다. 미국이 그런다는 얘기만 나왔지 결론에 대해서는 나온 얘기가 없다.

- 5차협상에서 빅딜이 일어날 거라고 하는데?

만약 농산물 문제, 의약품 개방 문제, 공공서비스 미래유보 문제를 섬유나 자동차 관세 문제와 바꾼다면 굉장히 잘못하는 일이다. 의약품, 공공서비스, 투자자 정부제소권 같은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관세 몇% 낮아지는 것과 바꿔선 안 된다. 그건 관세 낮아질 때만 효과가 있지, 그 다음에는 효과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것과 저울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부터 4대 선결조건을 줘버렸기 때문에 빅딜이 어렵게 됐는데, 우리로서는 무역 구제라든가 투자자 정부제소권 등을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맞서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섬유나 자동차 관세는 빅딜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정부가 그런 식으로 진행한다면 국민들은 이번 FTA 협상이 대단히 불평등하고 굴욕적이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진행:신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월~토 오후 7시~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