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보자기
2012. 10. 5. 10:58ㆍ살며 생각하며...
분홍 보자기
광화문의 뒷골목을 걸어가다가 가게 앞에 나와 있는
분홍보자기를 보았습니다.
명절 때 과일바구니나 한과상자 등을 감싸던
얇은 나일론 분홍 보자기였습니다.
넙적한 것을 분홍보자기로 곱게 싸서는 땅바닥에 두었더군요.
버린것 치고는 너무 모습이 고왔고, 파는 것치고는
땅바닥에 그냥 둔 것이 이상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 그것은 식당서 배달왔던
그릇들과 큰 쟁반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시켜서 먹게 되면 신문지로 덮어서
복도나 계단 한 구석에 내밀어두던
바로 그 처치곤란 네모난 쟁반이었습니다.
혼자서 장사를 하는 작은 가게 주인은 점심을 시켜서 먹어야 할 것이고
먹은 빈 그릇을 가게 안에 두면 냄새가 나서 안되니
부득이 밖에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쟁반 위를 신문지를 덮으면 바람에 날라가기도 하고,
검은 비닐로 감싸도 그 초라한 모습이 보기 좋지가 않지요.
그런데 그 골치덩어리 쟁반을 얇은 분홍보자기가 감싸안고 있으니
새색시처럼 수줍어보이기도 하려니와
애틋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수고로 만든 음식을 감사히 맛나게 먹은 후,
그 빈 그릇은 홀대하던 우리네 인심을 다시 생각케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 보자기로 싸놓으니
가게 앞에 있어도 보기 흉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신문지로 두어번 휘감고 보자기를 덮어 묶으려면 손은 한번 더 가지만
길 가는 여러 사람을 배려하는 그 센스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행복하시고
즐거운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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