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나를 딸로 낳았어">

2005. 11. 1. 10:12나의 취재수첩

<"엄마, 왜 나를 딸로 낳았어">
  2005-11-01 09:26:00 입력
   평생교육시설 수기 공모 '대상' 김옥균 주부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학력을 숨기며 결혼했지만 남편의 격려로 늦깎이 학생이 된 주부의 수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광주직할시 평생교육시설인 진명중학교 학생 김옥균(48ㆍ여)씨는 1일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학교연합회' 주최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열리는 수기 공모전에서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담은 글로 '교육인적자원부 대상'을 받는다.

   김씨는 아버지가 집안의 7대 종손인 종갓집에서 태어났고 오빠도 3명, 여동생도 4명이나 되고 사촌도 모두 모여 사는 '뼈대 있는' 가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이유로 김씨는 '내년에 보내주마'란 수기에서 밝힌 것처럼 40여년 전 초등학교 졸업 후 "계집애를 왜 중학교에 보내느냐"는 할머니 말씀 때문에 오빠들과 달리 공부를 접어야 했다.

   김씨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오빠와 동생의 교과서며, 심지어는 어머니가 생선을 사올 때 싸온 신문지도 버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다. 엄마한테 왜 딸로 낳았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결혼할 나이가 됐고 학력 때문에 맞선을 볼 때 마다 거절당했던 일, 결국 오빠 소개로 만난 지금 남편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속이고 결혼한 말 못할 사연도 모두 고백했다.

   결혼한 지 몇 년 뒤 학력 속인 일을 털어놓던 날을 김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어렵게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대답 대신 담배를 피워 물었고 한참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보, 기운 내. 당신 학력을 고졸로 인정하지'라며 오히려 위로해줘 부끄러움과 고마움에 한없이 울었다"
   6개월 전 어느 날 남편이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해 따라간 곳이 진명중학교.

   김씨는 "남편이 '당신이 내게 학력을 고백하던 날 기회가 되면 학교에 보내줄 거라고 결심했었다'며 손을 꼭 잡아줬다"고 전했다.

   40년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수학 공식도 밤새 외운 영어 단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렸다.

   '혹시나 나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을까' 하는 걱정에 반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고 교실 밖을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섯 달이 지난 지금은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가 됐다.

   누가 알아볼까 수기를 작성할 때도 가명을 사용했던 김씨는 "공부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날개를 단 기분이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주부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서중 기자(ipc00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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