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길 따라 봄마중 가다

2006. 3. 17. 20:53정보 얻어가는 즐거움

마을길 따라 봄마중 가다
강진 월남사터
김창헌 기자  

▲ 보리밭이 푸릇한 월남마을. 마을길 따라 걷는 기분이 상큼생큼하다.
ⓒ 전라도닷컴



▲ 월남사 3층석탑. 늘씬하면서도 늠름하게 서 있다.
ⓒ 전라도닷컴

마을에 `이상하게’ 서 있는 돌탑이 신기했다. 1층, 2층 3층…. `3층석탑이다’ `4층석탑이다’ 말이 많았다.  김창헌
2학기 중간고사 끝난 기념으로 세 친구와 `날랐으니’ 늦은 가을이었을 게다. 두발 깔끔한 고등학교 때다.
 
유난히 감나무가 많은 마을, 천황사에서 월출산을 오르기 시작해 구름다리에서 날뛰고 천왕봉에서 점심 까먹고 내려와 마주한 마을이었다.
강진 월남마을.
오늘은 그 마을에 봄마중 간다. 봄비 내리신다.
 
▲ 박새.
ⓒ 전라도닷컴
동백나무 아래 3층석탑

월남마을 앞에는 `전망 좋은 곳’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월출산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올려다본 월출산을 최고로 꼽는다 한다. 영암에서 바라봤을 때 월출산은 우뚝 솟아올라 남성다운 기세를 자랑하지만 강진에서 바라본 월출산은 숲과 마을을 잔뜩 껴안고 있는 포근한 산이라 한다. 바위봉도 수더분하단다.
 
그러나 짙은 안개에 산은 없는 듯 물러나 있다. 하지만 서운치 않다. 아담한 집들은 차분하고 보리밭, 파밭은 푸릇하다. 비 그쳐, 막 돋아나는 초록 풀들과 걷는 기분이 상큼생큼하다.
`봄까치꽃’은 이미 피어 있었나 보다. 연한 하늘색 작은 꽃잎이 날씨 탓하며 입을 다물고 있다.
 
월남마을은 `월남사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여느 마을처럼 집들이 오순도순 자리잡은, 고려시대 거대한 절간이 있었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대밭에 남아있는 담장과 민가에 있는 주춧돌이나 기단석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 있는 3층석탑과 석비는 사라진 월남사의 내력을 `증거’한다.
 


▲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의 비석.
ⓒ 전라도닷컴
풍성한 동백나무 아래로 3층석탑이 보였다. 물기에 흠뻑 젖어 있는 탑은 오래오래 살아온 빛깔로 고즈넉하다. 늘씬하면서도 늠름하게 서 있다. 절은 사라졌지만 산세와 집들과 나무들과 어울리며 그 풍모를 잃지 않았다.
까치가, 박새가 감나무에서 날아와 탑에 앉아 있다 날아간다. 끊이지 않는 새소리에 잠시 절 경내에 들어서 있는 기분도 든다.
 
월남사 3층석탑(보물 제 298호)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제 양식의 탑이다. 좁은 기단과 배흘림이 보인 탑신 옥개받침에서 드러나는 형식 등이 흔히 `백제오층석탑’이라고 불리는 부여의 정림사 5층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았다 한다. 8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무위사 스님들이 1년에 한 번 주위를 돌면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월남마을에는 3층석탑 외에 다른 탑 한 기가 더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영암으로 시집갔다가 다시 고향에 들어와 살고 있는 `탑동댁’ 백금숙(79) 할머니가 확인해줬다.
“이 탑보다 작은 게 있었어. 근디 무너져갖고 없어져 불었제.”
동네 사람들은 남아있는 3층석탑을 `숫탑’이라 하고 사라진 석탑을 `암탑’이라고 했다. 백금숙 할머니는 3층석탑을 `내 탑’이라고도 하는데 이유가 있다.
 
“우리집이 탑 바로 앞에 있었어. 내 놀이터였제. 숨바꼭질허고 동백나무 올라댕기고. 숨바꼭질할 때 고 탑이 찜하던 자리였어.”
그 동백나무는 아직 할머니 어렸을 적 크기 그대로란다. 한때 돌이 하나 빠졌던 탑도 군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더니 옛 모습을 되찾아 놓았다.

물결치며 굽이치는 '월출다원'

대숲을 끼고 조금 더 들어가면 용머리를 한 거대한 돌거북이 편마암 비석을 안고 있다. 이 석비(보물 제313호)는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의 비석이다. 비석은 위쪽이 깨어져 없어졌는데 깨어져 나간 비석 조각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돌거북의 형상이 용맹스럽고 힘이 넘쳐 무신정권 때인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 있으며 웃음이 나는 것이 큰 눈과 들창코 때문이다. 덩치는 크지만 그것이 오히려 순해 보이는 사람의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네 발가락은 등에 얹혀 있는 큰 비석 정도는 문제없다는 듯 힘이 있다.

▲ 봄비 내려 촉촉히 젖은 월출다원.
ⓒ 전라도닷컴
 
ⓒ 전라도닷컴

비석에는 한번도 서울땅을 밟은 적이 없으면서도 당시 나라 전체의 존경을 받았다는 진각국사의 행적과 그의 118명의 제자이름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글자 하나 찾기가 힘들다.

뒷면을 둘러보고서야, 눈에 힘주고 들여다보고서야 `보인다’. 글자가 빽빽이 적혀 있다. 그 발견에 호들갑 떨 정도로 글자가 희미하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차밭으로 향한다. 마을 돌며 내내 눈길을 붙잡은 곳이다. 태평양 회사에서 일궈놓은 `월출(강진)다원’이다
 
멀리서 본 것보다 차밭은 훨씬 넓게 자리하고 있다. 고랑이 넉넉하게 물결치며 굽이치며 뻗어있다. 등성이에 불그스름하게 겨울을 견뎌온 흔적 위로 때마침 봄비 내려 촉촉하다. 꼼지락꼼지락 초록을 향해 가는 길목일 것이다.
물기 머금은 바람이 좋다. 누가 뭐래도 봄바람이다. 이 비 맞고 이 바람 맞고 내일이면 모레면, 하루하루 다르게 봄이 찾아오겠다.
 
월남마을 바로 뒤, 금릉경포대에 동백꽃 보러 간다. 경포대 계곡은 월출산에서 가장 많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동백꽃 보고 나면 내친 김에 무위사까지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동백꽃은 하마 얼마큼 피었을까? 
 

가는 길: 13번 국도 따라 나주를 걸쳐 영암으로 간다. 영암에서 풀치재를 지나 4㎞ 정도 가면 왼쪽으로 월남마을 안내판이 보인다.  




▲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석상"이라고 자랑이 늘어지는 퇴동마을 김공님 할머니.
ⓒ 전라도닷컴

“300만원 주네 하믄서 폴라고 했는디 안 팔았어”
토동 입석상

“모르는 사람들이 와 갖고 200만원 주네 300만원 주네 하믄서 폴라고 했는디 안 팔았어. 팔아불믄 동네 해로울까봐.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잘 되라고 안판 것이여.”
 
월남사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하여 붙여진 `사문안골’이라고 하는 퇴동마을(원래는 토동마을이나 마을 사람들은 `퇴동’이라고 발음하고 마을을 알리는 비석에도 `퇴동마을’이라고 적혀 있다)에는 독특한 입석상이 있다. 
 



▲ 입석상에 새겨진 도깨비상.
ⓒ 전라도닷컴
마을주민 김공님(69) 할머니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석상”이고 “대전, 서울, 부산 학생들 교수들 사방 간디(군데)서 와 갖고 구경허고 창호지 놓고 두드려서 인쇄해 가는(탁본해 가는) 유명한 석상”이다.
 
토동 입석상(문화재자료 187호)은 연잎 무늬가 새겨진 둥근 대좌 위에 울퉁불퉁 자연석에 도깨비, 보살, 수행자 등 13개의 상(像)이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도깨비 신앙이 불교와 만나는 사례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무릎 정도 닿는 아담한 크기인 줄 알았는데 꽤나 몸집이 있다. 앞부분에 있는 도깨비상 2구가 도드라지는데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인다. 윗도리를 벗고 있어 배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쪽 도깨비는 왼쪽 다리를 구부리고 오른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있는데 도깨비는 왼쪽 다리가 약하다는 통념이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석상은 퇴동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월남사람들이 가져간 것을 일제강점기 때 되찾아왔다고 한다. 김용수(72) 할아버지가 아주 어렸을 때다.
“어르신들이 우리 돌(석상) 찾아와야 한다고 목도로 져갖고(짊어지고) 왔어. 동네 사람들이 몰래 갖고 온 것이 아녀. 작천주재소, 지금 같으믄 작천지서(경찰서)라고 헌디 그 때 지서장 데리고 그쪽 사람들과 얘기 정확히 허고 갖고 온 거여.”
 
목도는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밧줄로 얽어 어깨에 메고 옮길 때 쓰는 나무를 말한다. 퇴동마을 사람들은 정월 초사흗날 당산제를 지낼 때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고 난 후 이 입석상에도 제를 올린다. 퇴동마을은 월남마을 건너편 마을로 월남저수지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왼쪽에 있다.

기사출력  2006-02-24 14:52:35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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