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19. 13:43ㆍ정보 얻어가는 즐거움
다산! 강진에서 길을 찾다.
공자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 마흔은 어떤 일에도 미혹됨이 없는 때라고 말했다. 그래서 ‘불혹(不惑)’의 나이로 불리는 마흔. 이 흔들림 없는 시기에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이가 있다.
다산유물전시관, 윤희선 소장의 설명처럼 1801년 발생한 ‘신유사옥’으로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 정약용.
빼어난 학문과 비전으로 30대에 이미 조선의 개혁을 이끌었지만, 마흔 살의 나이에 모든 기반을 잃은 그는 유배의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산을 흠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강진. 천주교 탄압 사건으로 다산이 18년이나 머문 이 곳은 곳곳에 그의 흔적이 배어있다.
그러나 강진에 독특한 유배 문화를 남긴 다산도 처음부터 환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조선이 자랑하는 최고의 석학이었지만, 대역죄인의 낙인이 찍힌 정약용. 그를 맞은 것은 차디찬 냉대였다고 정연희 문화관광해설사는 말한다.
그렇게 처음 유배를 온 1801년. 강진 읍내에는 발조차 들려놓을 수 없었던 다산은 그 후로도 5년이라는 긴~ 세월을 동문 밖에서 외롭게 살았다.
이 때문에 그는 이 시기! 고독 속에 엄습해오는 절망감과 계속된 옥살이로 인한 몸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술로 세월을 보냈는데, 하루하루, 흐트러지던 다산. 그를 맑은 차 한 잔으로 깨운 이가 있었다.
지금도 객이 찾아오면 말없이 차부터 건네는 백련사.
신라 후기인 839년. 강진의 앞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만덕산 자락에 창건된 이 고찰은 이미 고려 시대! 만덕산 지천에 자라나는 차 나무의 새순을 따다 산세 좋은 돌 밑에서 솟는 물로 차를 달여온 곳이다.
그래서 일찍이 백련사는 고요와 안정을 주는 차를 통해 마음을 닦는 법이 발달했는데, 이러한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전통을 계승한 19세기 백련사의 주지, 혜장 선사.
그는 방황하던 정약용에게 한 잔의 차를 건네며 ‘끽다거(喫茶去)’! ‘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정신을 차리고, 또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본연의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깊은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렇게 그윽한 차의 향기로 다산을 깨워준 혜장 선사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마음을 잡은 정약용. 그는 1808년 만덕산 기슭에 초당을 세우고,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어간다.
정연희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둘러본 다산 초당. 숲 그늘이 짙은 산중턱에 자리해 조용히 책 읽기에 좋은 이 곳은 다산이 600여권의 저서를 쓰고, 이 지방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친 곳이다.
그래서 강의실로 사용된 초당을 비롯해 다산이 기거하며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한 ‘동암’. 제자들의 거처인 ‘서암’을 거닐다보면 인간으로서 가장 불행한 시기를 학문으로 승화시킨 다산의 위대한 모습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뜻을 세워도 강진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다산. 이 때문에 불우한 천재로 불렸던 그는 한없는 시름을 어떻게 달랬을까?
그 물음에 답하듯 평평한 바위 앞으로 걸음을 옮긴 정연희 문화관광해설사.
그녀가 가리킨 이 바위는 다산이 직접 차를 끊여 마시며, 마음의 시름을 씻던 곳이다.
실제로 정약용은 뜰 앞에서 차를 끊일 때마다 ‘다시(茶詩)’를 읊으며, 초월의 경지를 다짐하곤 했다.
이렇게 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정약용. 그는 이 때부터 1만여 그루의 차나무가 자생해 ‘다산(茶山)’으로 불려온 ‘만덕산’의 별칭을 자신의 호로 사용한다.
또한 다산 초당에서 산길로 8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백련사를 무시로 찾으며 혜장 선사와 다향을 나눴다고 한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채 반 시간이 걸리지 않는 오솔길. 다산이 혜장 선사와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오갔던 이 길은 사실 백련사로 가는 길,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10년째 차를 공부하고 있는 다인, 김지명씨. 우리 차를 더 많이 알고 싶어 지난 해부터 백련사에 머물고 있는 그녀는 종종, 이 오솔길을 걸으며 자신보다 200년 먼저 차의 세계에 입문한 다산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울창한 송림에 묻혀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다산의 거처, ‘동암’. 그 곳에서 글쓰기에 지친 다산은 굳게 닫았던 문을 열고, 산길로 향한다. 황톳길 양 옆으로 야생 차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오솔길. 그 길을 따라 산굽이를 돌면 구강포의 드넓은 바다가 보이고, 또 한 굽이를 넘으면 강진의 푸른 들과 청자빛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보면 닫혔던 마음조차 탁~ 뜨이는데, 특히 길이 끝나는 곳에 서있는 백련사의 자랑, 동백나무. 봄이면 7000여 동백나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이 길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활짝 꽃피운다.
이 때문에 다산의 길을 쫓아 백련사 만경루에 오른 김지명씨는 어느새 만사를 잊고 세상의 풍경에 빠져들게된다.
이렇게 한없이 풀어지는 마음을 잡기 위해서일까? 법상 스님은 만경루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달밤. 백련사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차를 권했다.
강진만의 갯벌을 따라 흐르던 물살에 달빛이 몸을 섞는 밤. 누각에 올라가 차를 마시면 밤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인 달이 노~란 차 빛깔에 빛을 더하고, 그 환한 빛이 마시는 이의 마음마저 물들이는 백련사의 ‘달빛차’는 마음을 밝히는 차로 유명하다.
그래서 다산도 마음이 막히거나, 한없이 풀어질 때. 백련사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신 뒤, 다시 다산초당으로 돌아가 학업에 몰두했다.
그 결과, 다산유물전시관 윤희선 소장의 설명대로 유배지에서 가장 빛나는 인생을 꽃피운 정약용. 강진의 초당생활 동안 동양 철학의 거대한 완성을 일군 그는 1817년. 마침내 긴 귀양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정신을 일깨운 강진은 지금도 삶의 길을 찾은 이들에게 마음의 불을 밝혀주고 있다.
kbs 라디오 국제방송에서 10개국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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