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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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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하얀 얼굴로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병풍바위 낭떠러지 끝에 걸린 구절초는 바람과 속삭이다가 들켜 상기된 얼굴로 하얗게 떨고 있었습니다.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힘겹게 올랐던 수인산성 능선에 점점이 찍혀 있었던 하얀 구절초가 무더기로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들국화를 사랑했습니다. 추수를 끝낸 들판 논두렁에 서리라도 내리면 더욱 노랗게 빛을 발하던 들국화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디도 감국(들국화)이랍니다. 그냥 아무도 찾지 않는 들판에 소리 없이 피어 있는 들국화가 좋았습니다. 서리를 이겨낸 꽃이라기보다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들국화이기에 더욱 좋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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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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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한데 오늘의 등산에서 나의 마음을 훔쳐가 버린 꽃이 있었으니 바로 하얀 구절초입니다. 아마도 내 사랑이 바뀌었나 봐요. 등산 시작부터 등산로에서 점점이 미소짓더니 정상의 바위 끝에 무더기로 쏟아지는 하얀 들국화의 미소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나 봐요. 산아래 꽃잎들은 가냘프게 피어 있더니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탐스러운 모습이 달덩이 처녀의 볼을 하고 있지 않겠어요.
가을의 꽃들은 주로 쑥부쟁이와 구절초, 들국화가 들판에 어우러지지요. 물론 길가에 코스모스가 화려한 모자이크 색으로 수를 놓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훔쳐 가는 꽃은 들판이나 언덕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들이겠지요. 쑥부쟁이 보랏빛 꽃잎들은 무더기로 피어서 눈에 띄고, 들국화는 노랗게 피어서 애처로운데, 구절초는 하얗게 하얗게 순수한 모습으로 어느덧 마음 속까지 다가오지요.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꽃이 바뀌어 버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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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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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시월의 첫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10명이 모여 전남 강진군과 장흥군의 경계에 있는 수인산(561m)을 찾았답니다. 전국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요. 이 수인산의 능선을 따라 수인산성이 쌓여 있는데, 이 성은 호남의 군사적 요충지인 병영성의 배후 성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남 장흥군 병영면엔 조선시대인 1418년에 병마절도사를 두고 병영성을 축조하여 전라도 병영을 두었던 곳입니다. 이곳이 호남의 군사적 본거지로 5백년 동안이나 이 나라를 지켜온 본영인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의 수군이 서해안을 돌아 선조가 있는 평안도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을 때 전라병영의 군사들은 왜군들의 수중에 들어간 지역으로 출병하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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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군 수인산 병풀바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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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또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양에 알린 <하멜표류기>의 저자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1653년 제주도에서 난파당한 후 14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이 땅에서 체험한 생활 풍속, 지리, 정치, 군사, 교육 등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썼는데, 특히 7년 동안 이 병영성에서 머물러 생활했던 내용들을 썼다고 합니다.
수인산성은 본래 삼국시대의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으로 고려 말에는 지금의 강진, 보성, 장흥, 영암 지역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들어 왔고, 조선시대 태종 때 전라병영이 설치되면서 재 수축된 길이 6km의 천년의 역사를 가진 산성입니다. 이 산성은 수인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을 축조했는데, 병영성을 빙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로 능선의 반대쪽에는 험한 바위들과 낭떠러지로 되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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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군 수인산 바위와 물들기 시작한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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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군 수인산 정상에 물들기 시작한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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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광주에서 오후 1시 40분에 출발하여 장흥 병영에 오후 3시에 도착했습니다. 등산로는 깨끗이 정비되어 있었는데 저수지 둑을 타고 홈골절터를 지나 쌀남바위 협곡을 오르는 길이 가팔랐습니다. 특히 비가 내리려는 날씨라 습도가 높아 처음부터 쏟아지는 땀과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수인상 주봉인 노적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인 노적봉(561m)은 근방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였습니다. 역시 병영성의 배후성으로서 사방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이었습니다. 멀리 장흥 앞 바다와 천관산, 월출산, 장흥 유치면에 막은 탐진댐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특히 노적봉의 남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적들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할 천연의 망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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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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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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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 노적봉에서 서문 성암터와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허물어진 성벽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병영성은 복원을 하고 있지만 수인산성은 전혀 복원을 하지 않아서 성벽들이 많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북문터에는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는 맷돌에 놓여 있었으며, 온돌을 놓은 집터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이 능선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등산로로 쓰이고 있었는데, 이 등산로에 하얗게 점점이 있는 구절초가 너무 탐스러웠습니다. 서문 성문암터에 다다랐을 때 이미 해는 넘어 갔는데, 일행 중에 전등을 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길가에 점점이 찍히어 있는 구절초 꽃봉오리들이 길잡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밤길에 보는 구절초는 더욱 순백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름 밤 하얀 박꽃 같은 구절초의 하얀 미소는 우리들의 발길을 자꾸 붙잡곤 하였습니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눈에 비치는 순백의 미소를 찍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성곽이 무너져 흩어진 아쉬움보다 발길을 잡는 구절초의 꽃잎에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느라고 자꾸 머뭇거렸습니다. 캄캄한 밤에 구절초 꽃잎은 더욱 하얗게 흔들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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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수인산 등산로에서 우리의 마음을 훔쳐 버린 구절초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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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서종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