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온라인 거래법'] 상.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 살펴보니

2006. 8. 20. 22:42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중앙일보 2005-09-12

 

온라인 구매가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피해를 보거나 불편을 겪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온라인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2002년 3월 제정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소법)'의 전문 45개 조와 부칙을 뜯어보니 허점투성이였다. 온라인 거래는 맹렬한 기세로 커졌으나 관련 법은 굼떠 소비자와 업체를 울리고 있다.

 

◆ '법은 몰라라'식 반품 규정=현행 전소법은 반품에 관한 규정이 모호해 소비자와 업체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의류 판매 사이트에서 청바지를 구입한 박모(28)씨는 옷이 맞지 않아 반품 하려다 택배비(3000원)를 누가 부담할지를 놓고 업체와 갈등을 빚었다. 여성 정장을 구입한 김모(24)씨는 받은 옷이 컴퓨터 화면에서 보던 이미지와 차이가 커 반품하려다 마찬가지로 택배비 때문에 소비자보호원에 조정을 의뢰한 상태다.

현행 전소법은 택배비에 관해 소비자 변심으로 인한 반품의 경우엔 소비자가, 물건에 흠이나 결점이 있으면 업체가 물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옷의 사이즈나 색상, 이미지 등의 경우엔 판별이 모호하다. 소비자보호원의 이종인 선임연구원은 "법이 규정하지 못한 중간 영역이 너무 넓어 문제"라며 "시행규칙이나 지침 등 하위 법령에 판매자가 상품의 약점과 착각할 수 있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도 반품 문제 때문에 골치"라며 "업체와 소비자 양쪽의 책임을 높여주는 방향에서 상품 설명 요건을 강화하면 분쟁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반품하려 해도 업체와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거나 업체가 반품 수거를 차일피일 미뤄 전소법상의 반품 기한(7일)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업체들이 "반품 신청을 받은 적 없다"고 발뺌 할 경우 입증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지에 관한 규정이 현행법에 없기 때문이다. 윤성호 변호사는 "오프라인에선 이런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 문제를 해결한다"며 "인터넷의 특성을 감안해 홈페이지에 청약 철회(반품) 코너를 만들어 이곳에 글을 올리면 반품 의사표시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두자"고 조언했다. 사이버소비자협회의 노종천 사무국장은 "청약 철회 의사표시를 대신 받아줄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를 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법의 사각지대 '오픈 마켓'=인터파크.GSe샵.롯데닷컴 등 인터넷 쇼핑몰이 상품을 쇼핑몰 명의로 파는 것과는 달리 옥션.G마켓.다음온켓.GSe스토어.인터파크 오픈 마켓 등 오픈 마켓에선 자기 명의로 물건을 팔지 않고 개별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거래를 중개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를 법에선 '통신판매 중개자'로 규정한다. 이런 오픈 마켓은 현행 전소법 20조에 따라 소비자에게 '통신판매의 중개에서 책임이 없다'는 사실만 미리 고지하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픈 마켓의 전체 거래 규모는 최근 3년 새 5배나 커졌다. 그 결과 올 상반기 오픈 마켓 상위 2개 업체의 매출액(수수료 기준 1010억원)은 인터넷 쇼핑몰 상위 2개 사의 매출액(910억)보다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로 남아 허위.과대 광고 제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이버대 법학과의 윤주희 교수는 "오픈 마켓을 통한 개인 간 거래(C2C)는 사이트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업체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책임 강화 필요성을 지적했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사기 사건이 잇따르는 데도 해당 사이트들은 오픈 마켓과 마찬가지로 '통신판매 중개자'로 분류돼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의 정지연 팀장은 "지난해 9월 이후 가격비교 사이트에 미끼 상품을 올려 소비자들을 자사 쇼핑몰로 유인한 뒤 구매대금을 챙겨 잠적한 사기 사건이 5건이나 발생했다"며 "가격비교 사이트들은 쇼핑몰로부터 수수료 등을 받는 만큼 가격정보를 올리는 쇼핑몰의 신원이나 게재 정보에 대한 확인 등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개업자의 책임'과 관련해 오픈 마켓과 가격비교 사이트는 자기들뿐 아니라 인터넷 벼룩시장이나 물품 가격을 조사해 주는 검색.포털업체 등도 마찬가지로 해당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옥션 관계자는 "구매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사이트 신뢰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도 좋다"며 "다만 법으로 중개업자의 책임을 강화할 경우 그 범위에 대해 세심하게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시장은 세분화되는데, 법은 포괄적=현행 전소법이 홈쇼핑부터 인터넷 쇼핑몰, 카탈로그 쇼핑, 인터넷 학원 등 각기 특성이 다른 모든 통신판매 업종을 뭉뚱그려 다루는 바람에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3월 공정위는 전소법을 개정하며 쇼핑업체들이 제품 포장 안에 넣어 보내던 공급서 규정을 없애고, '계약서를 계약자에게 e-메일로 보낼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계약서 송부를 편하게 해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통상 전화로 계약해온 홈쇼핑.카탈로그 쇼핑 업체들의 경우 고객의 e-메일 주소를 몰라 오히려 쩔쩔매게 됐다. 특히 주문자와 물건 인수자가 다른 '선물용 구매'에 대한 처리에 큰 혼란을 겪었다. 새 규정 때문에 계약서는 계약자(선물을 주문한 사람)에게 따로 e-메일이나 우편으로 보내고, 선물을 받는 사람은 계약과 관련한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된 것. 전에는 제품을 받을 때 포장 안에 공급서가 들어 있었지만 그게 없어 선물 받은 사람은 법적으로 교환 등의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게 된 것. 한 업체 관계자는 전체 판매의 10%를 넘는 선물용 판매의 계약서를 따로 보내느라 월 1억원이 넘는 비용을 감수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정위가 뒤늦게 계약서를 선물 받는 사람에게 보내고, 계약자(주문자)에게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허용했지만 TV와 집 전화로 이뤄지는 홈쇼핑 특성상 이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전소법의 대상을 업종 특성에 따라 세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