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짝퉁’의 천국

2006. 8. 23. 08:17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중국은 ‘짝퉁’의 천국
대표적인 위조품 시장 베이징 ‘홍차오’ 르포… 단속 심해져도 흥정은 계속된다

“롤렉스 있어요.”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인 짝퉁시장 ‘홍차오(紅橋)’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점원들의 흥정소리로 입구부터 시끌벅적했다. 한 평도 안 돼 보이는 시계 매장 수십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입구 쪽에서 만난 한 점원은 손목에 찬 금빛 롤렉스 시계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눈치를 살폈다. 수백점의 시계가 가지런히 정리된 진열장에는 ‘불가리’ ‘태그호이어’ ‘테크노마린’ 등 내로라하는 명품시계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매장마다 둘러서서 ‘싼맛’에 여러개의 시계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광경이 쉽게 목격됐다.
매장과 매장 사이를 돌기를 몇차례, 인상이 좋은 점원이 있는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커플시계를 들고 흥정을 시작했다. “480위안(약 6만2000원)” 점원은 짧고 빠른 어투로 잘라 말했다. 너무 비싸다는 표정을 짓자 조용히 계산기를 내민다. 원하는 가격을 직접 제시하라는 뜻이다. 홍차오에서 흥정은 기본이다. 동행한 가이드는 “흥정하는 맛에 홍차오를 찾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처음 제시된 가격의 30%선이 적정가라고 하지만 흥정에 정해진 룰은 없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부르면 장난하는 걸로 생각해 파는 쪽에서 먼저 거래를 접는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
고심 끝에 계산기의 숫자버튼으로 200위안을 누른 다음 내밀었다. 점원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경도 측정기였다. 진열대에서 다른 시계를 꺼내더니 그 위에다 대고 열심히 측정했다. 얘기인즉, 경도가 높은 ‘고급유리’를 사용한 ‘A급’ 시계의 가격을 깎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계산기에 300위안을 찍었다. 계산기 흥정은 5분여 동안 계속됐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저쪽에서 뭐라고 하든 일관되게 숫자 ‘200’을 쳐서 보여줬더니 결국 두손 들었다는 표정으로 시계를 내줬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짝퉁’의 나라다. ‘비즈니스 위크’는 중국에서 해마다 만들어지는 가짜 상품이 전세계에서 나돌아다니는 가짜 상품의 60% 이상에 해당하는 3400억 달러어치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각종 명품 의류와 액세사리에서 첨단 IT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못 만드는 물건은 없다. 비아그라를 만드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의 CEO 헨리 맥키널이 “중국 내 위조공장이 본사의 제조공장보다 크다”며 탄식했을 정도다.
중국의 짝퉁산업은 양쯔강(揚子江) 이남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특히 원저우(溫州)는 짝퉁산업이 일어난 곳으로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원저우 사람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정도로 이재에 밝다. 중국에서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투기에 앞장 서고 있는 것도 대체로 이곳 출신들이다.
가짜 상표가 붙은 의류나 신발은 거의 ‘메이드 인 원저우’라고 보면 된다. 명품 생산에서도 원저우는 ‘원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저우 출신 화교들이 세계 패션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에 몰려살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세계 각국의 명품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오기 무섭게 중국내 생산공장에서 위조품 생산이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른바 ‘동시패션’이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홍차오에서 옷을 팔고 있는 한 점원은 “옛날에는 한국산을 최고로 쳤지만 지금은 중국산이 품질면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중국인은 ‘21세기 연금술사’
중국사람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도 남다르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가짜 분유가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가짜 달걀이 유통되고 있다. 석회질 성분으로 껍데기를 만들고 특수성분으로 흰자와 노른자까지 만들어 넣은 가짜 달걀은 육안으로 구분이 거의 안 될 뿐 아니라 맛도 똑같다고 한다. 현지 신문에는 “600위안(약 7만8000원)을 내면 가짜 달걀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준다”는 내용의 광고가 실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화학 성분으로 만든 가짜 우유가 중국 당국에 적발됐다. 진짜 우유에 물을 타거나 우유와 비슷한 성분을 넣어 양을 늘리는 방법으로 만든 가짜 우유가 아니었다. 갖가지 화공약품을 섞어 탄생시킨 진짜 같은 가짜다. 없는 걸 만들어내는 ‘21세기의 연금술사’가 따로 없다.
홍차오에는 시계 외에도 옷과 신발, 가방 등 패션제품 판매점이 많았다. 이들 매장의 점원들은 하나같이 ‘폴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짝퉁’으로 짐작됐다. 그렇지만 매장에 진열된 옷들에서는 상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속 때문에 일부러 떼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유의 무늬나 디자인으로 어떤 명품을 위조한 것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몇개의 디자인을 선택한 다음 옷을 사겠다고 하자 점원은 숨겨뒀던 물건을 꺼내놓았다. 가슴 쪽에 붙은 상표가 선명했다. 처음 제시한 가격은 200위안. 흥정을 하자 가격이 80위안까지 내려갔다.
상인들은 생김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서양인들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서양인 관광객이 나타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유명상표가 찍힌 티셔츠를 한무더기 안기며 ‘버버리’ ‘폴로’ 등 상표 이름을 외쳐댄다. 이따금 당국에서 몰래 단속을 나오기 때문에 동양인들은 조심스럽게 대한다.
지적재산권 개념 아직 없어
중국에는 지적재산권의 개념이나 위조·복제가 왜 불법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 많다. 급속도로 진행된 경제개방 때문인지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登小平)의 말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어서인지 중국사람들은 돈버는 일에도 정도와 사도가 있다는 걸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자 중국 정부의 짝퉁 단속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세계 각국의 불만과 압력이 거세진 것도 큰 이유가 됐다. 홍차오에도 ‘에르메스’ ‘노스페이스’ ‘피아제’ ‘몽블랑’ 등 유명상표의 위조상품을 판매하지 말라는 내용의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짝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들이 그 유혹을 끊을 리 만무하다.
단속에 대한 상인들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다른 시계 판매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한산해 보이는 판매점을 찾아 ‘A급’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점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응했다. 판매대 아래 깊숙한 곳에서 꺼낸 가방 속에는 가짜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피아제’ 시계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점원은 “지금 보여주는 시계들은 정품과 비교해도 자신있다”며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중국은 비싼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속보다는 시장을 키우는 차원에서 ‘방치’하는 편이 명품 회사들에게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라며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중국에선 누구나 DVD 수집가
중국 출장중에 만난 주재원이나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DVD타이틀을 많이 구입해서 돌아가라고 권했다. 그들이 구매를 권한 것은 복제된 DVD타이틀이었다. 한국에서 신작 DVD타이틀이 1만원대 중반에서 2만원대의 가격을 형성하는데 비해 중국의 복제 DVD타이틀은 10위안(약 1300원)에 불과하다. DVD타이틀 가격이 공(空) DVD와 거의 비슷한 셈이다.
과거에는 극장에서 캠코더로 몰래 찍은 영화를 DVD타이틀이라고 속여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정품 DVD타이틀을 그대로 복제해서 판매한다. 당연히 화질이나 자막지원 등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
베이징에 정착한 한 사업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에서 한국영화까지 하나 둘씩 사모으다 보니 어느새 수백장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DVD 수집가가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중국 주재원들에게 DVD 감상은 없어서는 안될 생활의 일부분이 됐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위락시설도 별로 없는 중국에서 여가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격이 워낙 싸 경제적인 부담이 적다보니 DVD 감상은 유일무이한 취미생활로 자리잡았다. 주재원 가족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사모님’들도 짝퉁 쇼핑을 만끽한다. 일단 시장에 가면 없는 것이 없는데다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시장에서 흥정은 사는 사람 중심으로 이뤄지고 웬만큼 깎아도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없어 부담도 덜하다.
한 대기업의 임원급 주재원은 “골프채에서 명품가방에 이르기까지 짝퉁 물건이 꽤 있는 편”이라면서 “대기업 간부라는 지위 때문인지 짝퉁을 들고나가도 진품으로 알아주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베이징 /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