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뿔난 한국인

2006. 11. 8. 13:05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엉덩이에 뿔난 한국인

 
[정경희의 곧은소리]

[미디어오늘 정경희·언론인]

한국은 ‘짝퉁명품 전성기’다. 지난 9월 특허청이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2004년∼2006년 8월)에 의하면 짝퉁 중에서도 프랑스의 ‘샤넬’ 상표가 단연 1위다. 적발된 짝퉁의 16.5%가 샤넬 상표였다. 2위는 ‘루이뷔똥’으로 전체 짝퉁의 11%였고, 가방류에서는 단연 1위였다. 그 뒤를 이어 ‘카르티에’ 상표가 8.1%로 3위, ‘구치’가 7.1%로 4위, ‘페르가모’가 5.4%로 5위였다(한겨레·9월30일자).

문제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이 아닌 ‘걸어다니는 짝퉁-한국인’이다. 겉보기에 멀쩡한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깜짝 놀랄만한 가짜 ‘명품인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문제다.

한국인은 미국인 다음 ‘세계 2위의 부자’라고 한다면 누구나 “웃기지 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승용차 시장에서 대형차의 점유율이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다. 배기량 2000cc가 넘는 대형차(SUV포함) 판매비중이 올 들어 7월말 현재 30.5%로 세계 2위라는 것이다(10월26일 발표). 대형 승용차 판매비중은 8년 전(1998년)만 해도 4.3%였고, 4년 전(2002년)에는 14%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독일의 대형 승용차 비중은 21.1%, 일본은 20.5%라고 했다. 세계의 고소득 선진국을 비웃듯 대형 승용차를 몰고 거들먹거리는 이 나라의 졸부들이야말로 짝퉁 미국 부유층이다.

 

대형차, 수입명차 그리고 양주

 

거들먹거리는 짝퉁 선진국 부유층은 또 있다.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여봐란 듯이 과속으로 달리는 짝퉁 선진국 졸부들이다. 지난해 고속도로에서 시속 200㎞ 이상으로 달리다 적발된 자동차의 60%인 148대가 외제차였다한다. 그중 BMW가 50대, 벤츠가 15대였다한다. 세계의 명차(名車)라는 BMW나 벤츠를 타면 대한민국의 제한속도쯤이야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이 되나보다.

짝퉁 선진국 부유층은 이밖에도 또 있다. 값비싼 위스키 판매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17년산 프리미엄급은 지난해보다 9.6%, 12년산 프리미엄급은 2%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위스키 전체 판매량은 3.6% 늘었다한다(한겨레·10월27일자).

언론권력은 날이면 날마다 “경제불황”을 노래하는 판에 졸부들은 금쪽 같은 달러를 주고 수입해 오는 고급양주에 취해서 사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다.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대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영어장사’다. 전국 도처에 영어마을이요,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의 경우 850억 원을 쏟아 부어 꾸몄고, 한 해 운영비가 150억 원이라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또,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의 국어 우수학생은 19.5%, 영어 우수학생은 46.6%라고 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0월8일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에 나타난 우리의 현실이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한국어는 ‘멸종’되고, 5천만 국민이 영어를 쓰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35년 전의 경험을 재확인하고 싶다. ‘코리아’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서독에서 겪었던 일이다.

 

‘반기문 총장’ 한국냄새 나는 영어

 

한 서독사람이 물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어를 쓰는가, 일본어를 쓰는가?” 당시 평범한 외국인들은 한국을 역사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식민지’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자는 말했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쓴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한국어는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언어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언어”라고. 우리가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필자는 세계시민으로서 떳떳이 행세하자면 고유의 언어가 필수적임을 실감했다.

최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임되면서 필자는 35년 전 서독에서 확인했던 ‘국어의 국제정치학’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외교·통상을 총괄해온 직업 외교관 출신 반기문 장관의 영어는 뜻밖에도 유창한 영어가 아니었다. ‘콩글리쉬’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한국어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어였다.

생각해 보면 유창한 영어는 ‘식민지출신’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도 같다. 비록 발음과 억양이 유창하지 않아도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데 불편은 없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우리에게 그런 깨달음을 준다.

마치 미국사람이 된 것처럼 대형 승용차를 몰고, 수입 명차(名車)를 몰며 안하무인으로 달리고, ‘경제불황’을 노래하면서 값비싼 수입양주를 퍼마시고, 영어를 익히겠다고 돈을 펑펑 쏟아 붓는 이상한 나라.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 뿔이 난 괴물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삿대질하며 싸우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다.

정경희 선생은 한국일보 기자, 외신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2년 '위암언론상', 2002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1996년 8월부터 미디어오늘에 '곧은소리' 집필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문화연구'(1990), '정경희의 곧은소리'(1999), '실록 막말시대-권언 카르텔의 해부'(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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