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산학협력은 경기불황 때부터 시작”

2006. 11. 26. 19:04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일본의 산학협력은 경기불황 때부터 시작”



▲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아이카 겐이치 소장. ⓒ
작년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21세기의 지식혁명 경제에서 부(富)를 창조할 원동력은 교육”이라며 “교육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고서 선진 강국이 된다는 것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토플러 박사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의 수준이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글로벌 시대에 교육을 통한 과학기술 인재양성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교육개혁에서 절실한 것은 공학인재를 배출하는 국내 공과대학의 개혁이다. 공학교육의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면 치열한 국제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과학문화와 대중화 노력에 앞장서온 사이언스타임즈는 ‘공과대학, 변해야 우리가 산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많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註]

“과거 R&D는 기업이 모든 걸 주도”

일본이 산학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경기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전만 하더라도 R&D를 통한 기술개발은 기업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R&D 센터를 운영하면서 기업활동에 필요한 연구와 기술개발을 하도록 지원했다.

일본은 기업이 모든 것을 이끌어나가는 나라다. 기업이 경제만을 이끌고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이 과학기술을 이끌고 문화, 그리고 정치와 예술, 심지어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이끌고 있는 나라로 오직 기업만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나라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도 군부를 등에 업고 있었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평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래서 일본 기업들은 ‘잃어버린 10년’의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우선 R&D 비용부터 줄여나갔습니다. 큰 기업의 연구소들이 문을 닫거나 아니면 그 활동영역을 대폭 줄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과학기술개발에 대한 미래가 무너지기 시작한 거죠. 이 때 대학이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합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연구소 역을 대학이 맡기 시작합니다.”

일본 도쿄공업대학(東京工業大學, 이하 도쿄공대)의 명예교수이며 이 대학의 기술이전센터(TLO, Technology Licensing Organization)인 이공학진흥회(理工學振興會) 소장인 아이카 겐이치(秋鹿硏一) 박사. 한국 정부가 지난 11월 6일 개최한 ‘공과대학 혁신포럼 2006’에서 그는 기조강연을 통해 일본의 산학협력의 탄생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일본의 산학협력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95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이 출범하면서부터. 이후 1997년 산학협력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인 계획이 수립되고 특히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특성화’를 통해 공과대학에 전면적인 수술을 가한다. 여기에 국립대학인 도쿄공대가 선구적인 역할을 떠맡게 된다.

“국립대학 공대를 중심으로 특성화가 시작돼”

미국의 산학협력과 비교할 때 일본의 역사는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기업이 모든 것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짧은 역사에 비해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고 기업에 많은 기술을 이전해 산학협력체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카 교수는 ‘기술이전센터의 성공전략’이라는 강연을 통해 “대학의 기술을 이전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의 운영과 관리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도쿄공대는 IP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성공을 거둔 일본 최초의 모델 공대”라고 말했다.

도쿄공대는 동경대학을 비롯해 와세다, 교토 등 역사가 깊은 대학의 그늘에 가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진 대학이 아니다. 종합대학이 아니라 공과대학이라는 단과대학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경제를 이끌고, 과학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대학이다. 특히 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실용적인 과학기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작년 대학평가에서 도쿄대학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다.

아이카 교수는 “물론 대학의 원래 사명은 교육과 기초연구이지만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사명을 추가한다면, 대학은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창조를 통해 그 기술을 상업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사전의 많은 연구가 필요한 중요한 정책”
“일본,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어”

대학에 대한 일본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2003년 통계로 33조엔(1엔은 약10원)으로 일본의 총 연구비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의 연구원은 28만 명으로 일본 총 연구자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아이카 교수는 전했다.

도쿄공대에 입학해 이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환경공학을 가르치고 있을 정도로 25년 동안이나 도쿄공대에서 잔뼈가 굵은 아이카 교수는 “도쿄공대는 나노와 소재분야에 집중 투자해 차별화하고 있으며 그 외에 제조와 장비부문에도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국립대학의 법인화와 관련한 본지의 질문에 대해 “국립대학 법인화는 실시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그 결과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거나 충고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장점도 있고 단점도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사전에 많은 준비와 연구가 요구되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2004년, 국립대학을 법인화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아이카 교수는 도쿄대학에만 두고 있는 산학협력본부(OIL, Office of Industry Liaison)의 코디네이터(Coordinator, 아이카 교수는 일본말로도 코디네이터라고 한다고 했다.)에 대해 잠시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기술이전이나 기업체와의 협력관계에서 코디네이터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의사결정에서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

“‘코디네이터’들의 의사가 결정적 역할을 해”

“산학협력과 관련된 업무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대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민간기업에서 일했던 임원들로 나이가 있고 각기 다른 다양한 분야의 출신들입니다. 대학은 이들을 초청해 자문을 합니다. 그들의 자문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 반대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대학의 한 교수가 훌륭한 기술이라고 생각해 연구개발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 연구가 R&D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중요한 연구라면 코디네이터들과 상의합니다. 코디네이터들이 신통치 않게 생각하면 그 연구를 처음부터 포기해버립니다. 그래서 종종 코디네이터와 연구에 종사하는 교수나 연구자들이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에서는 코디네이터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대학에서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더라도 상용화에 실패하면 그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전혀 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학협력이 상용화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코디네이터들은 전직 민간기업의 임원들 외에도 변호사, 변리사, 특허 관련자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교수들은 제외된다. 도쿄공대의 OIL은 26명의 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행정직원 10명과 기술고문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코디네이터다. 대학의 아이디어를 상용화로 연결시키려는 일본의 집착은 대단하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