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치 저 눈치’ 꿀 먹은 벙어리 흉내내기 신세계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한다. 누구하나 속 시원히 대답 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뿐이다. 신세계의 고민거리는 명품 아웃렛 ‘신세계첼시’. 여주군의 허가를 받아 여주유통단지에 신축 공사를 시작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쳤다. 건설교통부가 딴죽을 건 것이다. 건교부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위반’이라는 명분으로 건축을 허가한 여주군을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신세계다. 오는 6월 개점을 앞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장 불발 땐 막대한 비용 손실은 물론 업체와의 마찰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건교부에 항의할 수도, 여주군을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 이런 신세계의 말 못할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신세계가 명품 아웃렛 사업에 진출한 건 2005년 6월. 미국 아웃렛 유통체인인 첼시그룹과 손잡으면서다. 첼시는 전 세계에 60곳의 아웃렛과 쇼핑센터 지분을 보유한 세계 최대 아웃렛 기업. 아시아엔 2000년 일본 미쓰비시 등과 합작으로 첼시저팬을 세워 진출했으며, 일본 전역에 5개의 아웃렛을 운영 중이다.
신세계는 첼시와 함께 국내에서 프리미엄 아웃렛 개발 사업에 착수하기 위해 합작투자법인인 신세계첼시를 설립했다. 신세계첼시의 지분은 신세계와 첼시 양측이 각각 50% 씩이다.
신세계첼시는 곧바로 신축 부지를 선정했다. 바로 경기 여주군 유통단지다. 신세계는 지난해 3월 여주군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여주읍 여주유통단지에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신세계첼시는 2개 동으로, 연면적이 각각 1만4천3백52㎡와 1만2천6백37㎡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합작사 설립 운영과 점포 개발은 신세계가, 임대와 디자인, 마케팅, 영업은 첼시가 맡는다”며 “이런 원칙에 따라 여주유통단지 8만평에 미국 뉴욕 인근에 있는 ‘우드베리 커먼 프리미엄 아웃렛’을 모델로 한 명품 아웃렛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아웃렛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정상 제품 판매가에서 30∼70% 싸게 파는 할인 판매 전문점. 일반 제품이 아닌 명품을 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아웃렛’으로 분류된다. 명품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직접 조달하기 때문에 ‘짝퉁’에 대한 의심을 덜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당시 구학서 부회장은 “첼시와의 협력을 통해 새 시장 진출에 자신감을 얻었다”며 “프리미엄 아웃렛 시장 진출은 신세계가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 위반’논란이 벌어지면서 신세계의 프리미엄 아웃렛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자칫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것.
사정은 이렇다. 건교부는 지난해 8월 여주유통단지에 건설중인 신세계첼시의 수정법 위반 사실을 여주군에 통보했다. 여주군이 현행 규정을 무시한 채 신세계에 허가를 해줬다는 내용이다. 수정법에 따르면 자연보전권역에서는 연면적 기준 1만5천㎡(4천5백37.5평)를 초과하는 판매시설을 지을 수 없다.
건교부는 이에 대한 시정을 여주군에 요구했으나, 여주군은 “무리한 법 해석”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주군 관계자는 “두 건물 사이에 폭 20m, 왕복 4차로의 도로가 있기 때문에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연접제한에 해당되지 않아 건축허가를 내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행법에는 건축물 연면적에 대한 제한만 두고 있을 뿐 두 건물이 분리될 경우에 대한 세부규정이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두 개 건물로 떨어져 있지만 건물주가 같고 두 건물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동일한 건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세계 측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주군과 마찬가지로 신세계첼시가 연면적 1만4천3백52㎡와 1만2천6백37㎡ 2개 동을 합치면 제한 기준을 위반하지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일까. 신세계는 건교부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수정법 위반 사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온 것이다.
건교부는 “수정법 위반 사실을 통보한 지난해 8월에 앞서 신세계첼시가 지난해 4월 수정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었다”며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여주군과 신세계가 모두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업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신세계 측은 건축 인허가권자인 여주군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여주군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을 때 건물이 나눠져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 곧바로 착공에 들어갔다”며 “지난해 8월 건교부가 여주군에 법령 위반을 통보했을 때도 여주군에서 중간에 도로가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해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논란이 확대되자 여주군은 지난해 12월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했다. 건교부도 이 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법제처는 지난달 6일 법령해석심의위원회를 열었으나 9명의 위원 중 6명만 참석한 데다 위원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려 이르면 3월 중순쯤 법령해석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신세계는 여러모로 난감한 눈치다. 신세계첼시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세계첼시는 오는 6월 오픈 예정으로 현재 90% 정도 공사가 진척된 상태. 법제처가 신세계 측의 손을 들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만약 법제처가 수정법 위반이라고 최종 판단을 내리면 신세계첼시는 판매시설 규모를 축소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신세계첼시의 건축허가 승인이 취소되면 신세계는 이미 투입된 7백억원에 이르는 공사비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또 미국 첼시에서 유치하기로 한 1천억원 규모의 외자 유치는 물론 3천여명의 고용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특히 여주유통단지 조성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신세계첼시는 물류창고, 공원시설 등이 들어서는 유통단지의 핵심 시설이다. 아울러 여주를 중심으로 전국 대도시에 신세계첼시 점포망을 구축하겠다는 신세계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신세계는 2호점 예정지인 부산을 비롯해 경기 북부 등 전국에 4∼5호점까지 매장을 늘릴 방침이다.
무엇보다 신뢰도 저하가 가장 골칫거리다. 신세계는 아르마니, 구찌, 페라가모 등 1백여개 해외 명품 브랜드와 이미 입점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아웃렛 개장에 문제가 생기면 신세계는 계약 불이행에 따른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입점하기로 한 브랜드로는 △돌체앤가바나, 에스카다, 코치, 디젤, 분더샵, 센죤 등 패션브랜드 △타미힐피거, 폴로, 게스, 브룩스브라더스 등 캐주얼브랜드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리복 등 스포츠브랜드 등 74개의 수입브랜드가 있다. 또 지방시, 리바이스, MCM 등 10개의 라이센스 브랜드와 빈폴, 김영주, 구호, 솔리드옴므 등 국내 유명 브랜드 18개도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스타벅스를 비롯해 한식, 중식, 일식 등 13개 레스토랑도 들어설 예정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건물이 거의 완공된 상태에서 법 위반 논란이 빚어져 난감하다”며 “1백여개 브랜드를 유치하는 프리미엄 아울렛사업이 해당 지역 발전에 미치는 영향과 지자체로부터 인허가를 받아 추진된 점이 법제처의 결정에 감안되면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될 것”고 말했다. 구 부회장도 한 언론에서 “법제처의 최종 결정을 존중하겠다”며 “그러나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그것도 외국의 대기업 유치를 통해 추진하는 사업을 간단히 접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밝힌 바 있다.
신세계는 건교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분위기다. 불이익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때문에 신세계는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 법제처의 판단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이 무산된 데 이어 여주 유통단지의 핵심 시설인 신세계첼시 아웃렛도 정부의 수도권 규제에 발목이 잡힐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