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양 · 외모 달라도 금강산서 '남북은 하나'

2005. 10. 8. 15:32나의 취재수첩

억양 · 외모 달라도 금강산서 '남북은 하나'
[외신기자 금강산 기행문] 알렉 키리야노프 서울지국장(러시스카야 가제타紙)
 
금강산의 명성은 업무 차 또는 연수 차 일찍이 이 땅을 찾았던 러시아 학자들과 외교관들을 통해 익히 들어왔던 터이다. 사실 북한에 대한 소감은 매우 다양하게 표출됐던 바이나, 금강산에 대한 평가만은 천편일률로서 ‘한반도 최고 명승지’ 그 한마디로 통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엇보다 오늘의 금강산은 남북한 관계 발전을 위한 효녀지로 정평이 나있다. 현대 창업주의 전격적인 북한 방문과 북한 지도부와의 만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외교 능력 등은 북한 최고위층과 빠른 시간 안에 화통할 수 있는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여하튼 한반도의 백미 금강산은 남북화해의 상징이자 ‘남한 국민’도 ‘북조선 인민’도 아닌 ‘미래의 통일 한인’을 지향하는 소중한 매개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소련군대와 흡사한 인민군 장병보자 북한 실감

러시아 대표 일간지의 서울 특파원으로서 직업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자는 금강산에 대한 보다 흥미롭고 유익한 기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항상 내재하고 있었나 보다. 당연히 국정홍보처의 금강산 프레스 투어 제안은 큰 기쁨과 함께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응낙해야 할 호재였다.

막상 닥쳐온 금강산 기행은 기자에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제공했다. 특수한 지역이기에 상당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숙소 잡기와 산행을 치루는 동안 다소간의 거리와 차창을 통해서라는 한계 조건은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나 공간상 비교적 가까운 범위에서 북한 마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북한 영토로 들어가면서 구소련 군대와 흡사한 인민군 장병들의 모습을 보자 ‘아 여기는 이미 북한이구나’ 하는 생각을 시나브로 하게 된다. 더구나 일행의 버스 행렬을 선도하는 인민군의 구소련제 군용 짚차 ‘우아지키’는 수차례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낯익은 물건이다. 또한 현대아산이 멋들어지게 재건축을 해 놓은 금강산 호텔도 구소련 시기를 살아 온, 아니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라도 보아 온 기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로비 중앙 천장에 달린 커다란 크리스탈 샹들리에, 웅장한 식당 등은 당 고위 인사들을 위해 지었던 구소련의 초대소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두런두런 일하는 모습도 경이로웠다. 물론 약간의 차이점은 느낄 수 있었지만 두레 작업에 지장을 줄 수 없는 미미한 것이었으며, 조장들의 적극성과 자신감, 중국 출신 조선족 버스 기사들의 헌신성은 가히 한민족다운 것이었다.

러시아 종합 일간지인 '러시스카야 가제타'의 알렉 키리야노프 서울지국장은 이번 금강산 기행을 통해 "한반도 통일의 현장을 살펴보고 온 것 같다"고 전했다.


금강산, 대자연이 창조한 아름다움의 극치

금강산을 처음 접한 기자에게 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태였다. 만물의 모습과 늪, 그리고 그 늪을 있게 한 폭포, 폭포위에 얹어진 하얀 구름, 세상 그 무엇이 이보다 아름다운가? 대자연만이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물은 고와서 흐르는 것을 그대로 마시면 그것이 생수였으며, 수많은 방문객에도 불구하고 종이 한 장 헛되이 날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물론 사람이 정한 엄한 벌칙이 있었지만, 산의 아름다움이 주는 외경감이 인간에 의한 더러움을 용납하지 않았으리라.

산행 어귀에서 만나는 북한 안내원 동무들은 옷매무새와 특유의 배지로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붙임성 있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 그러나 사진 촬영만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정치적 주제에 대한 대화는 즐겨 했다. 북경 6자회담에 대한 평가, 남한의 정치 상황, 한·미관계 등등, 특히 서방 기자들과의 대화를 엮어 나가다가 다소간 민망한 마침표와 경계심을 낳기도 했다.

외국인 기자 한국어 사용 찬사…러시아어로 질문도

그러나 러시아 기자로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기자의 경우는 상황이 사뭇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현재의 러시아 상황을 묻기도 했으며, 푸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의 돈독한 관계를 상기시키면서 친근감을 보이는가 하면, 간혹은 중등학교에서 배운 러시아어 한두 마디로 살갑게 다가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외국인 기자가 한국말(조선말)을 한다는 사실을 높게 샀다.

물론 북한의 손님인 우리들 모두 심각한 정치 토론은 피했으며, 속내를 쉽게 열지 않는 것 같던 북한 사람들도 다음 날 다시 만나면 보다 친근함을 보여주었으며 또 보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남북한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억양과 어휘이다. 북쪽 말은 남쪽 말보다 미세하나마 느린 듯 했으며 아니, 서두르지 않는 듯 했으며, 어휘에서도 사뭇 달랐다. ‘동무’라는 단어는 남쪽 방문객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회자돼 어느새 우리는 누구 동무, 어느 동무 하며 걷고 있었다.

한국 작은얼굴 여성 선호…북한은 '달덩이'형 미인

외모상으로 북쪽 남성들은 호리호리해서 남쪽 남성들의 맥주뱃살을 거의 보지 못했다. 여성의 경우 남과 북의 미의 기준에 차이가 있음을 간파할 수 있는 바, 남의 아가씨들이 마른 체형에 작은 얼굴을 선호하는 반면, 북한의 미인은 ‘달덩이형’에 마를린 먼로 흡사한 북한 형 글래머였다. ‘러시아 동무’에 호기심을 품은 북한 처자와 조금은 긴 시간의 대화를 가질 수 있었던 바, 그녀는 빨간색 노란색으로 물들인 남한 언니들의 머리색, 얼굴 무게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화장품의 두께, 그리고 배꼽 티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물론 사람마다 차별은 있겠으나 공화국에서는 그런 것 용납 안됨다” 그녀의 일성이다.

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보다 많은 것을 접하게끔 배려한 국정홍보처와 현대아산에 감사드린다.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은 빡빡한 일정을 감당하느라 양보해야 했던 단잠이었다. 금강의 주옥을 감상하며 오전을 보내면, 소중한 설명회와 공연, 서커스, 온천욕으로 해가 지고, 숙소 12층 하늘라운지에서 이어진 하루에 대한 정겨운 총화 시간은 북한 처녀들이 들려주는 노래만큼이나 달콤해서 잠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인도적으로 성공한 금강산 합작사업, 이제 경제적으로도 남북이 함께 윈-윈 하는 모범 사례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