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묵객들 이상향 지키는 우리 시대 마지막 훈장님
2006. 8. 19. 10:20ㆍ정보 얻어가는 즐거움
시인·묵객들 이상향 지키는 우리 시대 마지막 훈장님 | ||||||||||||||||||||||||
[사진으로 본 한국] 청학동서당 | ||||||||||||||||||||||||
새벽 4시30분.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 서경석·서흥석 훈장 형제 집에 불이 켜진다. 세상 모든 것을 말없이 품는 하늘과 바다처럼 만물이 조화롭기를 바라는 ‘해인경(海印經)’을 읊기 위해서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 기도는 마음을 닦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은 2주간의 교육을 마친 학동들이 돌아가는 날. 유건(儒巾)을 고쳐 쓰고 서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서당 식구들과 하루 일과를 의논하는 사이 뜨거운 여름 햇살이 마당 깊숙이 들어왔다. 그 햇살을 마중 나온 듯 바깥은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안녕하십니까! 훈장님, 저희 오늘 가요. 겨울방학 때 다시 올 거니까 기다려주셔야 해요.” “허허허. 잘가라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여기서 배운 대로 행동해야 된다. 알아들었능가?” “네에~. 근데 두 분이 너무 똑같이 생겼어요.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형님, 저짝 끄트머리부터 비질해 오소. 나는 여물을 챙겨 줄라요.” 익숙한 손놀림이 분주해지자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린다. 잠시 유건을 벗고 땀을 식히면 좋으련만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이곳에서도 선비 정신을 배우는 까닭이다. 모름지기 소는 힘을 쓸 때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법. 그 안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자세를 배운다. 올해 나이 쉰 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지만 배움이란 끝이 없다. “인자 텃밭으로 갈 거요. 지금이야 소일거리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생계를 잇던 곳인게. 날마다 몸을 낮추고 잡초를 쑥쑥 뽑으며 게으름 피지 않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곤 허요.” 숨 가쁜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두 훈장은 청학동을 떠나는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도시로 나간 사촌형들은 “외진 곳에서 그만 답답하게 살라”고 다그치지만 그 마음은 한결같다. “선조들은 청학동을 꿈에도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라 했어요. 아, 예서 자란 우리가 세속의 무엇이 그리울라구. 옛 모습을 고수하며 선현들의 얼과 전통을 계승해 갈라요.”
그들에게 고민이 있다면 학동들에게 참배움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는 것이다. 인성은 뒤로한 채 경쟁만을 부추기는 교육 현실에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전북 남원에서 김인철(55) 책임 훈장을 모셔왔다. 25세 때부터 훈장의 삶을 살아 온 그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4학년이 전부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공부에 매진해 일찌감치 훈장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새아빠를 거부하던 13세 소녀에게 ‘낳아준 은혜도 중요하지만 길러준 은혜가 더 큰 것임’을 일러주었다. 교육 마지막 날, 소녀는 김 훈장을 찾아와 “배움을 잊지 않겠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 뒷모습에서 가슴 벅찬 무언가가 솟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 훈장의 덕 있는 가르침 속에 서경석·서흥석 훈장도 새로운 이상향을 꿈꾼다.
“소년소녀가장·고아 등 배움의 기회가 적은 아이들이 많어요. 그 학생들이 언제든 찾아와 공부를 할 수 있는 터를 만들라요. 청학동은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묵객들이 묵었던 곳으로 이름나 있고, 인재를 많이 배출한다 했으니 미래의 약속을 지켜야지 않컸어요. 허허허.”
여름이면 어린 학동들의 글 읽는 낭랑한 소리로 가득한 청학동서당. 이제 곧 그 풍경을 1년 내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인성에 바탕을 둔 가르침을 전하고 싶은 쌍둥이 훈장의 하얀 박꽃 같은 순박한 웃음이 나란히 피어 오른다.
청학동서당 055-884-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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