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르포]봉황마을은 폭염이 좋다

2006. 8. 20. 06:37내고향강진의 향기

[현지르포]봉황마을은 폭염이 좋다
어민 100여명 바다에 풍덩 바지락 종패채취 구슬땀
2006년 08월 16일 (수) 09:31:33 조기영 기자 alzza@gjon.com

   
 
 
지난 14일 오후 3시 칠량면 봉황리 선착장. 팔월 뙈약볕이 쏟아지는 가운데 20여척의 어선이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 어선마다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8명까지 주민들이 올라탄 채 물때를 헤아리고 있다. 어림잡아도 100명을 넘는 주민들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은 봉황리 주민들이 바지락 종패를 채취하는 날. 종패 채취는 바다 농사의 씨앗을 준비하는 일이다. 주민들의 소득과 직결되는 만큼 좋은 종패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민들의 말처럼 기동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온 셈이다. 

   
 
 

지난 12일부터 시작한 종패 채취는 이날 막바지 작업에 이르렀다. 바지락 종패를 채취하는 일은 바지락 양식을 하는 이 마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봉황리 주민들도 3년만에 바지락 종패를 채취한다. 특히 해양오염 등의 이유로 바지락 종패의 서식환경이 크게 변화되면서 올해처럼 대규모의 종패가 나타나기는 이례적인 일이란 것이 주민들이 설명이다.

또 예전부터 바지락 종패가 많이 자라던 대섬 인근으로부터 800여m 떨어진 바다에서 종패가 발견된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란다.


   
 
 
썰물이 시작되자 어선들은 일제히 강진만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선착장에서 700m 정도 떨어진 바다로 나온 주민들은 일명 ‘조랭이’라고 불리는 작업도구를 만지며 1시간 정도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물 속에 들어가서 작업할 수 있을 만큼 바닷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종패를 채취할 때 사용하는 조랭이는 흡사 잠자리채를 연상시킨다. 1m40㎝ 정도의 긴 막대기에 반원형의 그물주머니를 매단 모양새다. 그물주머니 앞에는 바닥을 긁을 수 있도록 갈퀴가 달린 점이 특징이다.  


   
 
 
사람 가슴 부위까지 물이 빠지자 주민들의 손길이 덩달아 바빠진다. 주민들은 양손에 조랭이와 대형 대야를 들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바지락 종패를 채취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주민들은 신발을 벗고 양말만을 신은 채 물속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그 모습이 의아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주민들은 발바닥의 감각으로 종패가 모여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감지한다는 것.

물 속을 걷다가 발바닥에 까칠까칠한 느낌이 전해오는 지점을 조랭이로 긁어낸 후 개펄을 바닷물로 씻어내면 바둑알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바지락 종패가 그물주머니에 담겨 나왔다.


   
 
 
주민 안창남(55)씨는 “발바닥에 자석이 붙었제”라며 “살살 가다가 발바닥이 사박사박하는 데를 긁어내면 여지없이 종패가 있는 곳이제”라고 설명했다.


채취한 종패는 대형 대야에 가득 담겨져 각 어선으로 옮겨졌다. 똑같은 물질을 하지만 종패를 건져 올리는 솜씨는 주민들의 수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1시간 남짓의 작업으로 대형 대야를 바지락 종패로 가득 채운 주민이 있는 반면 대야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채취량이 적은 주민도 있었다. 3일째 작업을 하다 보니 채취량은 전날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동행한 박윤수(67), 정행숙(여·60)씨 부부도 2시간 정도 물질을 했지만 전날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20㎏을 채취했을 뿐이다. 박씨는 “종패를 채취한 첫날에는 조랭이로 10번 정도 긁어내면 한 대야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며 “올해처럼 대규모로 종패가 서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민들의 작업은 종패를 채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28㏊에 달하는 공동양식장에 위치한 개인양식장으로 채취한 종패를 옮겨 골고루 뿌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칠 수 있었다. 이날 채취된 바지락 종패는 개인양식장 300평에서 2년간 더 자란 후 상품으로 판매된다.


봉황마을 서순배(59)어촌계장은 “강진만 해역복원사업의 영향 때문에 물길이 변화하면서 대규모의 바지락 종패가 나타난 것으로 짐작된다”며 “모처럼 종패를 채취하면서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