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로] 그곳에 고향이 있길 원한다면…
2006. 8. 25. 19:54ㆍ내고향강진의 향기
[낮은 목소리로] 그곳에 고향이 있길 원한다면…
〈강광석/전농강진군농민회 정책실장〉
시간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현재의 고통이 몸의 한 모퉁이를 칼로 도려내는 듯이 아픈 사람에게 이 말처럼 한가한 위로도 없겠지만 실상 그 말보다 적절한 위로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내 생에 다신 사랑 따윈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다시 사랑을 하고 결혼합니다. “내 다시 이 집구석에 발을 디디나 봐라”하면서 온갖 저주를 퍼붓고 떠난 사람도 명절 때면 형제자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태풍 때 바람을 맞고 처참하게 찢긴 나무도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제 모양을 만들어 갑니다. 시간은 변화의 기회가 되고 살아낼 수 있음의 근거가 됩니다. 살아낼 수 있음의 근거는 살아있음입니다. ‘살아있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무뎌지고 적과의 화해가 가능하며 아프면 아픈 대로 견디는 지혜도 생깁니다.
고립무원의 산중 절간에서 구도의 길을 가며 용맹정진하는 선승에게 꼭 필요한 것은 화두와 시간과 건강이랍니다. 화두가 이끄는 데로 나아가며 번뇌와 인내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견성하게 되는데 화두와 시간을 이끄는 것은 몸뚱어리입니다. 화두라는 관념을 지탱하는 것은 역설적이게 철저히 유물론적입니다. 사유함 때문에 참 인간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으로 살아있지 않으면 사유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선승일수록 건강 섭생에 치밀하고 철저합니다.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파괴와 건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절과 이기주의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파괴의 향연장이 된 농촌-
요즘 농촌은 온갖 파괴의 향연입니다. 저곳에서 적어도 10억년은 있었을 산능선이 불과 1년 만에 사라지고 이쪽에서 적어도 5,000년은 흘렀을 강이 물길을 달리합니다. 300년은 넘었음직한 정자나무가 사라지고 멀쩡한 도랑이 하수도 공사로 사라집니다. 마을 뒷산보다 높게 성토가 쌓이고 그 위로 차가 지나갑니다. 비포장도로가 포장이 되고 아무렇게 심어진 나무들이 베이고 그 자리에 일렬로 벚꽃나무가 심어집니다. 정자나무가 있던 자리에 나무토막으로 엉성하게 지어진 우산각이 사라지고 시멘트 기둥의 당당한 쉼터가 생깁니다.
무엇이 나아졌을까요? 이전의 생활과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까요? 하루 아침에 이전 시대의 삶과 문화를 규정했던 자연과 생활양식이 사라집니다. 제 몸에 맞는 옷인지도 모르면서 근대화, 현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원시적 농법을 근대화시켜 들녘에서 개구리와 민물새우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다시 친환경농법으로 가자고 아우성입니다. ‘이전 시기와의 철저한 단절이야말로 혁신’이라고 믿었던 그 때의 건설지상주의자들은 지금은 없고 병든 들녘만 남았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생산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많은 것을 잃어야 했고, 그 결과 농촌에서도 지하수를 그대로 먹는 일은 무모한 객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농촌을 구조조정한다고 합니다. 농민 숫자를 더 줄이는 방법은 지금처럼 그대로 놔두고 보면 됩니다. 10년 전 농촌인구 평균 연령이 55세였는데 지금은 65세이고 10년 뒤에는 75세가 될 테니까요. 더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 친환경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라는 말은 더 많은 짐을 지고 더 빨리 달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땅과 자연 회복의 시간 필요-
제초제와 살충제 없이 더 많은 농사를 무슨 수로 짓는단 말입니까? 법과 제도, 관행과 체제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노력에 따라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땅이나 자연이나 물이나 하는 것은 만들어진 시간만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파괴는 완전한 회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건설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자연치유력의 범위 밖에서 강력한 물리력으로 작용합니다.
현대적 개발과 건설은 좀더 철저한 파괴를 정당화하고 이것의 동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본과 이윤입니다. 유전자변형식물로 지구의 씨앗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씨앗은 씨앗을 머금는다는 자연의 섭리가 깨지고 있습니다. 5,000년 우리민족을 지탱한 농경 생산의 질서와 기억이 불과 30년 만에 파괴되었습니다. 농촌의 자연, 농촌사회와 문화가 10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당장 파괴의 속도와 강도를 조정해야 합니다. 고향이 그래도 어려울 때 찾는 곳으로 남아있길 바란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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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현재의 고통이 몸의 한 모퉁이를 칼로 도려내는 듯이 아픈 사람에게 이 말처럼 한가한 위로도 없겠지만 실상 그 말보다 적절한 위로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내 생에 다신 사랑 따윈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다시 사랑을 하고 결혼합니다. “내 다시 이 집구석에 발을 디디나 봐라”하면서 온갖 저주를 퍼붓고 떠난 사람도 명절 때면 형제자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태풍 때 바람을 맞고 처참하게 찢긴 나무도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제 모양을 만들어 갑니다. 시간은 변화의 기회가 되고 살아낼 수 있음의 근거가 됩니다. 살아낼 수 있음의 근거는 살아있음입니다. ‘살아있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무뎌지고 적과의 화해가 가능하며 아프면 아픈 대로 견디는 지혜도 생깁니다.
고립무원의 산중 절간에서 구도의 길을 가며 용맹정진하는 선승에게 꼭 필요한 것은 화두와 시간과 건강이랍니다. 화두가 이끄는 데로 나아가며 번뇌와 인내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견성하게 되는데 화두와 시간을 이끄는 것은 몸뚱어리입니다. 화두라는 관념을 지탱하는 것은 역설적이게 철저히 유물론적입니다. 사유함 때문에 참 인간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으로 살아있지 않으면 사유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선승일수록 건강 섭생에 치밀하고 철저합니다.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파괴와 건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절과 이기주의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파괴의 향연장이 된 농촌-
요즘 농촌은 온갖 파괴의 향연입니다. 저곳에서 적어도 10억년은 있었을 산능선이 불과 1년 만에 사라지고 이쪽에서 적어도 5,000년은 흘렀을 강이 물길을 달리합니다. 300년은 넘었음직한 정자나무가 사라지고 멀쩡한 도랑이 하수도 공사로 사라집니다. 마을 뒷산보다 높게 성토가 쌓이고 그 위로 차가 지나갑니다. 비포장도로가 포장이 되고 아무렇게 심어진 나무들이 베이고 그 자리에 일렬로 벚꽃나무가 심어집니다. 정자나무가 있던 자리에 나무토막으로 엉성하게 지어진 우산각이 사라지고 시멘트 기둥의 당당한 쉼터가 생깁니다.
무엇이 나아졌을까요? 이전의 생활과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까요? 하루 아침에 이전 시대의 삶과 문화를 규정했던 자연과 생활양식이 사라집니다. 제 몸에 맞는 옷인지도 모르면서 근대화, 현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원시적 농법을 근대화시켜 들녘에서 개구리와 민물새우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다시 친환경농법으로 가자고 아우성입니다. ‘이전 시기와의 철저한 단절이야말로 혁신’이라고 믿었던 그 때의 건설지상주의자들은 지금은 없고 병든 들녘만 남았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생산하기 위해 보이지 않은 많은 것을 잃어야 했고, 그 결과 농촌에서도 지하수를 그대로 먹는 일은 무모한 객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농촌을 구조조정한다고 합니다. 농민 숫자를 더 줄이는 방법은 지금처럼 그대로 놔두고 보면 됩니다. 10년 전 농촌인구 평균 연령이 55세였는데 지금은 65세이고 10년 뒤에는 75세가 될 테니까요. 더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 친환경적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라는 말은 더 많은 짐을 지고 더 빨리 달리라는 말과 같습니다.
-땅과 자연 회복의 시간 필요-
제초제와 살충제 없이 더 많은 농사를 무슨 수로 짓는단 말입니까? 법과 제도, 관행과 체제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노력에 따라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땅이나 자연이나 물이나 하는 것은 만들어진 시간만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파괴는 완전한 회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건설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자연치유력의 범위 밖에서 강력한 물리력으로 작용합니다.
현대적 개발과 건설은 좀더 철저한 파괴를 정당화하고 이것의 동기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본과 이윤입니다. 유전자변형식물로 지구의 씨앗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씨앗은 씨앗을 머금는다는 자연의 섭리가 깨지고 있습니다. 5,000년 우리민족을 지탱한 농경 생산의 질서와 기억이 불과 30년 만에 파괴되었습니다. 농촌의 자연, 농촌사회와 문화가 10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당장 파괴의 속도와 강도를 조정해야 합니다. 고향이 그래도 어려울 때 찾는 곳으로 남아있길 바란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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