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도 울고 가는 청담동 귀족 짝퉁 ‘판친다’

2006. 8. 25. 23:59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오리지널도 울고 가는 청담동 귀족 짝퉁 ‘판친다’

심층취재 베일에 가려진 ‘귀족 짝퉁’의 세계

‘세계 인구 1%를 위한 가치’. 최근 가짜 명품시계로 들통난 ‘빈센트 앤 코’ 사기극의 홍보 전략이다. 이번 사기극은 ‘선택된 소수만이 사용하는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이른바 ‘귀족 마케팅’을 내세웠기에 소위 ‘귀족’이라 일컬어지는 부유층 및 연예인들에게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기극이 통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청담동’이라는 지명 이미지 덕분이다. ‘명품 거리’, ‘트렌드 1번지’로 잘 알려져 있는 청담동에 간판만 내걸면 짝퉁(가짜 명품의 은어)이든 뭐든 다 통하는 형국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 파문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게 명품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시계뿐만 아니라 패션의류, 가방, 액세서리, 앤티크, 고가구 등 ‘제2의 빈센트 사건’을 예고하는 짝퉁들이 저변에 널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일부 수입차(비공식) 대리점, 성형외과(비전문의), 미용실(무자격 미용사) 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요서울>은 ‘귀족 마케팅’과 ‘스타 마케팅’, 그리고 ‘청담동’이라는 배경에 초점을 맞춰 이번 사건을 들여다봤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빈센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청담동 귀족 짝퉁의 세계’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지난 8일 오후 2시. 강남구 청담동 일대를 돌던 기자의 눈에 들어온 간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명품잡화점, 수입차 대리점, 성형외과, 미용실이 그것들이다. 모두 청담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귀족을 대상으로 스타를 이용,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매장이 과연 ‘청담동’의 명성대로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기자가 들어간 20여 곳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경기불황이 극에 달해 있지만, 이곳 청담동 일대를 찾는 상류층 귀족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인 모양이다.


일반손님 10명보다 귀족 1명이 ‘이익’
이곳 일대에 위치한 명품잡화점 관계자들은 대부분 자주 찾는 단골손님을 여러 명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부유하다고 한다. 그래서 매출이 늘 꾸준하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을 등지고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P 명품잡화점. 이곳의 박모(39) 팀장은 “이 바닥에서 잘나가는 사모님 한두 명 정도 확보해 놓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들다”며 “물론 그들은 G명품관을 이용하지만, 그곳 상품이 다 빠졌거나 원하는 상품이 없을 경우 명품잡화점을 찾기 때문에 늘 제품들을 순환시켜야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매장에서는 명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판매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의 타깃 대상 0순위는 ‘귀족’들이다. 일반손님이라도 돈을 잘 쓰면 상관없다.
하지만 일반손님인 경우는 사실상 ‘아이쇼핑(눈으로만 구경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또 구매하더라도 재구매율이 낮아 장기적으로 볼 땐 그다지 이익이 되는 손님은 아니라는 게 박팀장의 말이다.
그는 “일반인인 내가 일반손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매출만 놓고 볼 때, 일반손님 10명보다 귀족 1명이 나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귀족과 일반손님에게 접근하는 판매방식도 다르다. 귀족들은 명품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따라서 매장 측의 ‘스타 마케팅’은 그들에게 반갑지 않은 전략이다. 하지만 일반손님은 정반대다. ‘연예인 OOO가 입었던 브랜드’라고 소개만 해도 그 명품은 불티나게 팔려, 바로 품절이라고 한다.
빈센트 시계 매장 주변에 있는 B 명품잡화점의 장모(43) 사장은 논현동에서도 명품 매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장사장은 “같은 강남 일대라도 논현동보다 청담동이 매출이 훨씬 낫다”며 “청담동에서 명품시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 등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브랜드의 시계는 10개를 들여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품절되고, 사실상 몇 개만 팔아도 남는 장사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장사장은 “귀족들은 자기만족을 중시하며, 드러나지 않은 명품의 진가를 음미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에 명품 라벨을 붙이고 그럴싸하게 포장, 고가에 팔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며 “이를 교묘히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그레이’들 사기, 해외도피
이 같은 사례는 비공식 외제차 대리점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을 ‘그레이 임포터’(Gray Importer, 이하 ‘그레이’)라고 일컫는다.
한 공식 모터스업체의 정모 마케팅 과장에 따르면, 그레이들은 공식 외제차 대리점에서 판매되지 않는 모델인 희귀차량이나 특이차량, 고가차종 등을 수입해서 차량을 국내로 들인다.
귀족들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으로 꼽는 외제차’라는 자부심에 이들 차량을 선호한다고. 그 예로 가수 박모씨,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김모씨, 영화배우 박모씨 등이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비공식 외제차의 A/S는 1년밖에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월드와이드워런티’라고 한다. 세계 어디서든 A/S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어 정과장은 귀족들을 상대로 짝퉁영업을 벌이는 그레이들의 실상에 대해 귀띔해주기도 했다.
그는 “요즘 그레이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일부 그레이들은 청담동 일대를 누비며 귀족들을 상대로 짝퉁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레이들은 ‘희귀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매장의 규모를 최소화하고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나 입소문을 통한 일대일 개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과장에 따르면 짝퉁영업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짝퉁 외제차를 귀족들에게 암암리에 판 뒤 해외로 도피하는 것이다.
사실상 계약서 등 차량 문서 보관이 5년 기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5년이 지나면 문서를 폐기해도 상관없다는 얘기. 때문에 일부 악덕 그레이들은 차량 판매 후 해외로 도망갔다 5년 후에 입국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차량 전체가 짝퉁은 아니지만, 차량 구입 시 장착해주는 옵션 기능을 일부 생략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며 “그 예로 이중접합유리, ABS, DOHC 등의 보이지 않는 기능을 빠트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운다”고 전했다.


‘비전문의’면 ‘짝퉁’ 기분들어
성형외과도 마찬가지로 ‘짝퉁 의원’들이 곳곳에 성행하고 있다. 의원들은 전문의와 비전문의로 나뉜다. 전자는 ‘OOO 성형외과 의원’이라고 표시하고, 후자는 ‘OOO 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라고 표시한다. 물론 둘 다 ‘짝퉁’은 아니다. 비전문의도 엄연히 전문가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 봤을 때 비전문의를 전문의인줄로 알고 시술 받았을 경우, ‘차후에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는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실수가 아닌, 병원 측에 속았을 경우의 이야기다. 이는 기자가 청담동 일대 대여섯곳 성형외과를 돌면서 대기 손님들에게 일일이 물어본 결과다.
청담동의 D 성형외과의 박모 의원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비전문의’ 병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었는데 언론에서 크게 다룬 이후 많이 모습을 감춘 모양새”라며 “그들이 실력이 있고 없고 여부를 떠나 손님들 인식이 부정적이라 간판을 교묘하게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청담동 일대가 잘 되는 편”이라며 “이는 지명의 네임밸류가 높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편, 박 의원은 “우리 병원에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O씨, 미모의 S씨, 모델 L씨 등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많이 다녀갔다”며 그들의 사진을 파일로 만들어 스크랩해 놓기도 했다.
이런 파일 목록을 만드는 등 ‘스타 마케팅’은 손님들에게 신뢰감을 주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실제로 손님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한 홍보글(스타 마케팅 포함)과 입소문으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고창 출신 미용사가 교육
미용실도 성형외과와 다를 바 없다. 스타 마케팅을 중요시한다.
강남역 근처의 미용업체의 임모 원장은 “청담동 일대에 무려 80여억원을 들인 미용실이 있는데 이곳은 연예인들이 줄을 잇는다”며 “그래서 그 주변은 늘 팬들로 웅성거리고 미용실 내부도 북새통을 이룬다”고 말했다.
또 미용실의 명성이 자자한 만큼 예약은 필수며,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머리 염색만 하는데 무려 20만원이 넘는다. 겉이나 내부나 인테리어도 굉장하다는 게 임원장의 설명.
하지만 임원장에게 듣는 이 미용실의 내막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강남 청담동 일대 미용실에서 전북 고창 출신의 미용사에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임원장은 지역을 운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며 “명색이 강남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미용실이 그 명성에 걸맞는 자신 있는 전문가가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결국 ‘속 빈 강정’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눈썹시술이나 아이라인 문신 등 고도의 미용기술을 요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 교습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전문적이지 못한 수준”이라며 “결국 무자격 짝퉁 미용사들이 판쳤던 셈”이라고 비난했다.
청담동 귀족들을 상대로 이 같은 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귀족들의 명품 소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또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향후 '제 2, 3의 빈센트 파장'이 몰려올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은혜 기자>kkeunna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