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기도 전 꺾인 무궁화동산의 '악몽'

2006. 9. 2. 20:34내고향강진의 향기

피기도 전 꺾인 무궁화동산의 '악몽'

20여년 자식처럼 가꾼 6,000여주 건설사가 도로공사하며 밀어버려
"치매 부친이 도장" 강변에 눈물만

“오랜 세월 자식처럼 가꿔 온 무궁화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는데도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나라 꽃 사랑한 것도 죕니까. 법이 있으면 뭐 합니까.”

윤용기(52)씨의 얼굴은 시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도 눈 앞에는 20년 가까이 길러 온 무궁화 6,000주가 그대로 서 있는 것만 같다는 윤씨는 1년 넘게 사라진 무궁화의 행적을 뒤쫓느라 이미 지쳐 있었다.

윤씨의 무궁화 사랑은 남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유달리 좋아했던 그는 20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 해고된 뒤 시간이 남자 무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물려 받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고향 땅에 무궁화를 심어야 겠다고 맘 먹었다. 윤씨는 광주의 한 목욕탕에서 세탁일을 하면서 모은 돈을 고스란히 무궁화 심는 데 썼다. 이후 세탁소를 세운 뒤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고추 깨 대추 키우던 밭에 웬 무궁화냐고 꾸지람 하셨다”는 그는 “하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무궁화를 키운다는 기쁜 마음으로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강진에 갔다. 부인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고 무궁화를 심는 동반자가 돼주었다. 이렇게 해서 윤씨는 밭 200평에 무궁화 6,000주를 심었다. 돈으로 치면 약 4억원(2005년 조달청 책정 가격 기준)에 달한다.

특히 윤씨는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는 밭에 무궁화를 잘 가꿔 2002년 월드컵 때 이곳을 지나는 외국 손님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꽃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소망은 윤씨가 2001년 위암 2기 판정을 받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그는 “몸이 아픈 것보다 무궁화를 내버려 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수술 후 윤씨는 고향에 머물며 부모와 함께 무궁화를 가꾸면서 빠른 속도로 기력을 되찾았다.

윤씨는 그러나 지난해 6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며칠 전까지 멀쩡하게 있던 무궁화가 한 그루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건설업체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했다. 윤씨의 ‘무궁화 동산’은 한국도로공사가 2002년 발표한 목포_광양 고속도로 건설 구간에 포함됐다.

윤씨는 그러나 건설회사 현장사무소 책임자로부터 ‘선 공사 후 보상’ 원칙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며 “법대로 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윤씨는 “도로를 새로 만들 때 측량 단계부터 땅 주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기본 아니냐”고 가슴을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설회사는 윤씨 이름으로 공사를 해도 된다는 승낙서를 만든 뒤 2003년 치매에 걸린 윤씨 아버지의 도장을 받아낸 것이었다. 무궁화보다 가격이 훨씬 싼 고추를 심은 것으로 쳐서 보상하면 어떻겠냐고 회유하기도 했다.

포크레인 기사가 땅을 갈아 엎기 전 “무궁화가 이렇게 많은데 밀어도 되느냐”고 물었는데도 건설회사나 하도급 업체 현장 책임자 모두 “문제 없다”고 했다는 사실을 알아 낸 윤씨는 지난해 9월 도로공사 건설업체 하청업체에 대해 재물 손괴 등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올해 5월 “땅 주인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 공사를 한 잘못은 분명 있지만 무궁화 등을 일부러 훼손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에게 기공 승낙도 받았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윤씨는 억울했다. 그는 “무궁화가 있는 것을 알고도 밀어버렸는데 잘못이 없다는 것이 무슨 논리냐” “치매 걸린 아버지 도장이 찍힌 승낙서를 근거로 판단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소용 없었다.

그는 며칠 전 도로공사와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항고했고 절도죄로도 고소했다. “무궁화가 잘 자라고 있는 사진이 있어 이것이 분명한 증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윤씨는 “도로공사나 건설업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제멋대로 땅을 다룬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고 말했다.

윤씨는 혼자서 법정 싸움을 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로 벌써 2번이나 쓰러져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는 “아들 딸들한테 무심한 아빠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애지중지 키운 무궁화가 어디 있는지나 알았으면 덜 안타까울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