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구제’가 향후 협상 방향 가를 듯 "상품·서비스·지재권 ‘진전’"

2006. 12. 11. 10:45나의 취재수첩

‘무역구제’가 향후 협상 방향 가를 듯 "상품·서비스·지재권 ‘진전’"
활발한 물밑 접촉 계속…6차협상은 내년 1월 한국서
  2006-12-11 10:42:15 입력
“상품, 서비스, 지적재산권에서 상당한 실질적 성과 이뤘다”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
“많은 분야에서 훌륭한 진전이 있었다”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


9일 미국 몬타나 빅 스카이 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 결과에 대해 양측 수석대표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초강수 전략으로 무역구제, 자동차, 의약품 협상이 잠정 중단된데다 미측이 쇠고기시장 개방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러 분과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우리 측은 올해 말까지 제출되는 미측의 의회보고서에 무역구제 관련 요구사항이 담길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한다는 방침이어서 연말까지 치열한 물밑협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김종훈 한미 FTA 한국측 수석대표가 9일 오전 (한국시간)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 리조트에서 5차 협상 최종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의회 제출 보고서에서 한국제안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는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의 말이 무역구제 분야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쪽으로 실현된다면 “협상의 전반적인 진전을 봐가면서 양측의 득실을 따져보겠다”는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의 방침에 따라 자동차, 의약품 등 전체 협상도 급진전을 볼 가능성이 높다.

6차 협상은 내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 상품, 서비스, 지재권에서 큰 진전

이번 협상에서 상당수 상품의 개방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미측은 TV, 카메라, 피아노 등 206개 품목(상품액 기준 6억달러), 우리측은 플라스틱제품, 스피커, 음향기기 등 204개 품목(3억9000만달러)의 관세를 즉시 철폐키로 했다.

이에 따라 품목수 기준으로 즉시철폐율이 미측과 우리측이 각각 80.3%, 82.5%로 높아졌다. 관세철폐 예외적용을 받는 기타품목은 미측과 우리 측이 각각 106개, 165개로 줄었다.

특히 미측은 외국화물에 0.21%의 금액이 붙는 물품취급수수료를 철폐키로 함에 따라 우리 수출업체는 연간 4700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서비스·투자분과에서는 의사나 간호사, 수의사, 건축사, 엔지니어 등과 같은 전문직 자격증을 서로 인정해 준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이를 다룰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법률서비스와 관련, 외국법 자문업의 한국시장 개방시기를 'FTA 발효 직후'로 확정했다. 또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내국민 대우' 적용을 배제키로 했다.

금융서비스분과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금융감독당국간 협력 △금융업계 건의사항 관련 협의를 위한 작업반 설치 등에 합의했다. 또 보험중개업의 국경간 거래를 해상, 항공, 운송보험, 재보험 등 기존 개방분야로 한정하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

지재권 분과에선 미측이 지재권 병행수입이 금지돼야 한다는 기존 주장을 협정문에서 삭제키로 했다. 병행수입이란 음반, 책, 상표 등 전속권 소유자가 국내에 있더라도 지재권 침해로 보지 않고 동일한 음반, 책 등을 수입할 수 있는 것으로, 이에 대해 김종훈 대표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과 비견될 만큼 우려가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또 △형사처벌시 양형기준 도입(권장사항) △특허출원시 특허청구범위 기재요건 △저작물의 고정요건에 대한 각국 법령 적용 등에 합의했다.

총칙 분야에서는 조세조치에 대한 FTA 적용을 배제하고, 향후 FTA가 체결되더라도 양국 조세협약이 우선한다는 원칙에 동의했다.

이밖에 △환경분과에서 대중참여제도 도입 △원산지분과에서 고무, 가죽, 구리제품 등 절반 가량의 원산지 기준을 확정짓는 성과를 거뒀다.


◆ 무역구제 쥐고 전체 협상 조율

섬유분과는 차관보급으로 격상돼 별도 협상을 가진 결과 향후 협상을 위한 만족할만한 기본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측은 관세 조기철폐와 얀 포워드 등 원산지기준 완화를, 미측은 세이프가드 도입과 타국산 섬유의 우회수출 방지를 위한 세관당국간 협력을, 각각 요구하고 있다.

농업분과 협상은 민감품목별 관심도와 민감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구체적 품목별 양허안은 논의되지 못했다.

특히 쌀 시장 개방과 관련, 커틀러 미측 대표가 “언젠가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데 대해 김종훈 대표는 “아직까지 (미측이) 한마디도 안했고, 앞으로도 못하게 할 것”며 쐐기를 박았다.

이번 협상의 하이라이트는 무역구제를 매개로 자동차, 의약품 등 3개 분과의 협상을 잠정 중단시킨 우리 측의 초강수 전략.

우리측은 올해 말까지 무역구제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기존 14개 요구사항 중 실질적인 효과가 큰 5가지를 추려 제시했지만 미측의 답변이 없자 ‘더이상 협상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무역구제 협상을 중단시킨 뒤 이와 연계해 미측의 관심사항인 자동차, 의약품의 협상도 문을 닫아버렸다.

특히 우리 측은 무역구제 관련 5가지 요구사항을 선정할 때 △미측의 법개정 필요 여부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 시비 여부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종훈 대표는 “미측이 우리 측 요구를 면밀히 검토해 의회보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니 기대를 갖고 주시하겠다”며 “여러 채널을 통해 미측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미측 의회보고서가 제출될 때까지 활발한 물밑접촉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측이 무역구제 분야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자동차, 의약품 등 전체협상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양측이 풀 것은 풀면서 협상의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말했다.

전체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다음주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미 상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하는 등 고위급 협상이 이뤄지고, 실무선에서도 잦은 접촉을 가질 예정이어서 이번 협상이 끝난 뒤에도 비공식 형태의 실질적인 협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양한 층위의 협상이 어떤 식으로 결론나느냐에 따라 내년 1월 15~19일까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6차 협상의 방향과 한미FTA 전체 협상의 운명이 결정날 것으로 보인다.

김서중 기자(ipc007@hanmail.net)
김서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