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장서 한국산 밀어내는 중국제 ‘가짜 한국산’

2007. 1. 15. 13:10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해외시장서 한국산 밀어내는 중국제 ‘가짜 한국산’

도어폰 전문업체 코맥스의 박수만(36) 과장은 지난해 6월 러시아에서 날아온 이메일을 받고 경악했다.

“당신네 비디오폰 제품을 샀는데 한 달새 5번이나 고장이 났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어 파느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 50여개국에 수출하면서 품질만큼은 최고라고 자신해 온 터였다.

다음날 현지에 급파된 직원이 국제전화를 해왔다. “과장님, ‘짝퉁’입니다. 짝퉁에 당했습니다.” 러시아 소비자가 코맥스라고 믿고 산 제품은 중국 업체가 디자인과 상표를 베껴 만든 가짜였다. 뜯어보니 회로 기판(基板)까지도 완벽하게 똑같았다. 이런 제품 수천 대가 러시아 시장에 깔린 것이다. 코맥스는 문제의 제품을 ‘진품’으로 바꿔줬다. 박 과장은 “우리도 피해자지만 브랜드의 신뢰도를 지키기 위해 애프터서비스를 해줬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코맥스가 지난해 해외시장에서 당한 피해는 총 20여건, 액수로 따지면 250만달러에 달한다.





◆짝퉁에 잠식당한 수출시장

IT와 가전·자동차 등 첨단 산업에서도 한국산의 브랜드 파워에 무임승차하려는 모조품 피해가 흘러넘치고 있다. 과거 짝퉁은 디자인과 브랜드만 모방하고 품질은 형편없는 ‘열등 짝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중국산 짝퉁은 내부 설계와 기능까지 감쪽같이 베껴낼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런 ‘첨단 짝퉁’들은 중국 내수 시장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수출되면서 오리지널 한국 제품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로 인한 수출 차질액은 연간 142억달러(13조원), 전체 수출의 5%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모방제품 조사기관 ‘맥스만’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중국 4대 도시 80여곳 상가를 조사해 보니 66%(53곳)에서 한국 브랜드 짝퉁이 나왔을 만큼 심각한 지경이다.

짝퉁에 밀려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위성TV용 셋톱박스를 만드는 A전자가 대표적 사례. 이 회사는 2005년 초 중동 시장에 한 대당 75달러짜리 보급형 셋톱박스를 출시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디자인과 성능이 거의 동일한 중국산 짝퉁이 중동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 짝퉁 제품의 가격은 A전자의 절반인 35~40달러선. A전자 제품은 순식간에 판매대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A전자는 황급히 현지 정부에 짝퉁 제품의 판매금지를 요청하는 등 대응 조치에 나섰지만, 30여일 만에 손을 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지 유통업체마저 중국 제품을 ‘한국산’이라고 속여 팔더라”며 “더 버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해당 시장에서 철수했다”고 말했다.





◆첨단 제품 따라잡는 첨단 짝퉁

삼성전자는 중국 내 판매량의 12%에 이르는 650만대가 ‘애니콜’의 모조품 혹은 짝퉁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1대당 평균 판매가격(ASP)이 175달러이니, 줄잡아 11억달러(1조원)에 이르는 잠재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LG전자는 지난해 9월 중국 서부 오지 우루무치에서 가짜 LG 에어컨·TV를 만드는 가전 제품 공장을 발견했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짝퉁 재고만 해도 에어컨과 컬러TV 등 도합 1000여대. 우루무치에서 생산된 짝퉁들은 중국뿐 아니라 카자흐스탄·몽골 등 인근 국가로 팔려나갔다.

레인콤·엠피오 등 MP3 업체들은 CeBIT(세빗)이며 CES(소비자가전쇼) 등에 신제품을 내놓는 것조차 꺼려할 지경이 됐다. 제품 정보가 공개되면 중국 업체들이 한두 달 만에 짝퉁을 개발, 절반 값으로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업종과 지역을 불문

이 밖에 철강재며 자동차 부품, 산업용 전기설비, 각종 과자류와 식품 등 한국산 인기 제품을 모방하는 짝퉁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는 “2~3년 전만 해도 중국·동남아에서나 한국 브랜드 짝퉁이 보였는데, 지금은 일본·북미·중남미·호주·중동·동유럽 등 세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에서 경차 판매 1위를 차지한 중국 치루이(奇瑞)자동차의 ‘큐큐(QQ)’는 대우차 마티즈의 짝퉁으로 의심받고 있다. QQ는 한국산 경차보다 20~30% 이상 저렴한 300만~400만원대 가격에 팔리면서 순식간에 남미 경차 시장을 평정했다. 현대모비스 등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가 중국산 모조 부품으로 인해 입은 피해도 한 해 2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정철환기자 plomat@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