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 09:51ㆍ내고향강진의 향기
다산의 첫 제자 치원 황상(巵園黃裳) 추모제 열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의 최초의 제자로 알려진 치원 황상(巵園 黃裳)선생의 제1회 추모제가 서거 138주년을 맞아 지난 1월 29일(음,12월22일) 강진읍 동문 4의재(四宜齋)에서 열려 선생의 훌륭한 문학사상을 기렸다.
1802년 문도공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읍 동문 밖 주막집인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에 귀향 살이 4년을 보내는 동안 4의재(四宜齋)를 개설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때 강진의 여러 제자들 중 황상이 가장 뛰어나 다산 선생은 과거시험에 응시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황상은 동문에서 태어났고 4의재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벼슬길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향 각지의 문사들이 찾아뵙기를 원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두보(杜甫),한유(韓愈),소식(蘇軾),육유(陸游)의 학문을 습득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드러내 보인 시인으로 후학들은 그를 시사(詩師)로 부르기도 한다.
선생은 당대의 석학이자 명필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와 학문적 교우관계를 맺을 만큼 학문적 내공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추사선생은 죽기 직전에 황상의 시(詩)에 대해 “내가 살아생전에 너보다 잘 지은 사람은 없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스승인 다산은 시(詩)짓는 재주가 ‘으뜸’이라 했다.
황상은 후일 대구면 항동에 일속산방(一粟山房)이라 불리는 움막집을 짓고 살았는데 추사의 제자인 초의선사(草衣先師)의 소개로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오는 해배 길에 그곳에서 만나 시(詩)를 지어 나누었으며 훗날 한양에 가서도 교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36년 2월 20일 다산선생이 타개하자 황상은 손수 스승의 시신을 염습했으며 현재 남양주에 있는 다산선생 묘 자리도 수제자인 황상선생이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양 광식 강진문화재연구소장은 “4의재(四宜齋) 복원을 계기로 황상선생이 학문을 닦았던 장소에서 추모제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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