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브랜드 스토리

2011. 4. 12. 10:39브랜드스토리

티파니 브랜드 스토리

 

남성들의 로망이 시계라면 여성들의 로망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블루박스’에 담긴 ‘육지(六指) 세팅’ 결혼반지는 다이아몬드 로망의 끝이라고 할 수 있죠. 티파니의 블루박스는 ‘완벽한 프러포즈, 행복한 결혼’의 상징이 됐습니다. 영화 ‘신부들의 전쟁’에서 케이트 허드슨과 앤 해서웨이는 남자친구가 숨겨 놓은 블루박스를 찾아내고 환호성을 지르죠. 이 작은 상자가 들려주는 티파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1837년 문구점 출발, 다이아몬드 제국으로

 

티파니의 출발은 문구점이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했던 1837년, 25세의 청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사진)는 친구 존 영과 함께 미국 브로드웨이에 은제품과 문구류를 판매하는 잡화상 ‘티파니 앤 영’을 열었다. 그의 가게는 파리에서 들여온 잡화나 중국 도자기 따위에 ‘정가’를 붙여 화제가 됐다. 정찰제를 고수하는 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굳어져 1861년 링컨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메리 토트 여사도 정가를 주고 산 진주 세트를 착용할 정도였다. 훗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목걸이를 구입하며 값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자 “링컨 대통령은 할인받지 않으셨다”고 응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미국 남북전쟁 땐 북군에 칼·깃발 등 납품

 

티파니는 1853년 친구의 지분을 인수하고 ‘티파니 앤 코’로 브랜드명을 바꾼 뒤 승승장구했다. 1858년 유럽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횡단케이블이 개통되자 남은 전선을 사들여 10㎝ 길이로 자르고 황동을 입혀 키홀더와 팔찌를 만들었다. 티파니 인증서를 넣은 이 기념물 가격은 50센트였다.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는 연합군(북군)에 칼·깃발·수술 도구를 납품했고 1884년엔 자유의 여신상 개막식의 초청장을 제작하기도 했다. 1885년 디자인한 미국 정부의 공식 인장은 오늘날까지 1달러 지폐와 공식 문건에 사용되고 있다.

 

브랜드는 1851년 뉴욕 최고의 은 세공사 존 무어와 그의 사업체를 인수하며 업그레이드됐다. 창립 30년 뒤인 1867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미국 디자인 회사로는 처음으로 8개의 메달을 수상한 것. 무어가 채택한 은 순도 925/1000(92.5%) 규격은 미 의회에서 ‘스털링 실버’의 법정 기준으로 인정받았다. 이즈음 티파니는 과도하게 장식적인 유럽 스타일을 버리고 단순하고 실용적인 미국적 디자인을 개발해 나갔다. 1878년 파리박람회에는 폴딩 펄햄이 세공한 법랑 소재 난초 브로치 24점을 출품해 비평가들을 사로잡았다. 펄햄은 1900년 파리박람회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티파니의 명성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1887년 티파니는 50만 달러를 들여 프랑스 제2왕실의 몰락 때 쏟아져 나온 왕실 보석의 3분의 1을 사들였다. ‘다이아몬드의 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 계기다. 그는 왕실 컬렉션에 왕관 모양과 ‘티파니 뉴욕-파리’란 인장을 넣어 가치를 높여 되팔았다. JP모건이나 밴더빌트, 하버마이어스 가문 등 신흥 부유층이 고객이 됐다. 1902년 아들이며 아르데코 디자이너인 루이 컴포트 티파니가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1930~40년대 경제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위기를 겪었다. 1955년 맨해튼 최고 백화점 ‘본위트 텔러’의 창업주인 윌터 호빙이 브랜드를 인수했다. 1979년 화장품 회사 ‘에이본’이 백화점과 티파니를 사들였고, 1984년 미국 투자가 앨버트 그린필드의 ‘BSC’가 이를 다시 인수해 198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지금은 마이클 코와르스키 회장과 제임스 퀸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커팅부터 세공까지 21번의 공정을 거치는 티파니 다이아몬드는 캐럿(중량)이나 크기보다 광채가 중요하다. 티파니는 1877년 287.42캐럿짜리 옐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한 뒤 미국 최고의 광물학자 조지 프레드릭 쿤츠 박사의 조언을 받아 128.54캐럿으로 가공했다. 중량은 반 이상 줄었지만 당대 최고였던 58면 연마기술을 82면으로 끌어올린 것. 이 옐로 다이아몬드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의 목에 걸린 뒤 지금까지 티파니의 ‘비주얼 담당’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티파니의 뮤즈와 창조자들

 

1955년 티파니를 인수한 호빙은 이듬해 전설적 디자이너 잔 슐럼버제를 영입했다. 프랑스 출신인 잔 슐럼버제는 화폐 가치로 보석을 평가하는 걸 경멸해 “차라리 옷깃에 수표를 꽂고 다니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리본 로제트 목걸이’는 그의 대표작이다. 오늘날과 같은 PPL(영화·드라마 협찬을 통한 간접광고)이나 스타 마케팅의 효시인 셈. 티파니는 그의 사후 ‘바위 위에 앉은 새’ 브로치에 옐로 다이아몬드를 다시 세팅해 뉴욕 5번가 티파니 부티크에 영구 전시하고 있다. 당대의 패셔니스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역시 그의 팬이었다. 우리의 칠보 같은 고대의 미술기법인 ‘파일로니 에나멜링’을 독자적으로 재현한 팔찌는 ‘재키 팔찌’로 불리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엘사 퍼레티는 뉴욕에서 모델 활동을 할 정도로 미모와 감각이 빼어났다. 티파니 주얼리 디자이너로 데뷔한 것은 1974년. 불가사리와 콩, 눈물 등의 소재를 재해석한 은 제품이 특기였다. 특히 ‘오픈 하트’ 펜던트는 지금까지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

 

2006년에는 독일의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금속과 나무, 돌을 이용해 만든 구조적인 주얼리를 선보였다. 물고기를 형상화한 ‘피시’ 컬렉션과 건축적인 비틀림이 돋보이는 ‘토크’ 컬렉션이 그의 대표작.

 

파블로 피카소의 딸 팔로마 피카소도 30년째 티파니를 위해 일한다. 피카소의 여섯 번째 ‘공식’ 연인인 프랑수아즈 질로가 그의 어머니. 파리에서 연극 의상을 만들며 커리어를 쌓다가 입생로랑을 거쳐 티파니에 합류했다. 원석을 활용한 대담한 디자인과 스케일이 장기. 동양의 12지신에서 영감을 받은 ‘조디악 컬렉션’처럼 이국적인 디자인에 재능이 있다.

 

완벽한 결혼의 상징을 발명하다

 

1 프러포즈의 상징이 된 티파니 블루 박스. 2 ‘6지 세팅’ 다이아몬드 반지는 웨딩 링의 대명사다. 3 옐로 다이아몬드 브로치 ‘바위 위에 앉은 새’. 4 전통 에나멜 기법을 재현한 ‘재키 팔찌’. 5 전통을 재해석한 아르누보풍 ‘레거시’ 링. 6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피시’ 컬렉션.

 

① 티파니 블루 청잣빛을 닮은 오묘한 블루 컬러는 로빈새(울새의 한 종류)의 알에서 유래했다. 브랜드가 만들어진 19세기엔 신부가 결혼식 하객들에게 이 색깔의 비둘기 장식을 선물하는 게 관례였다고 한다. 티파니는 1845년 결혼상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 표지에 이 색을 처음 쓴 뒤 박스와 쇼핑백, 광고 등에도 통일감 있게 사용했다. 컬러를 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일원화 전략은 당시로선 매우 선도적인 것이었다.

 

② 육지 세팅 1886년 개발된 ‘티파니 세팅(육지 세팅)’은 세계 최초로 밴드와 다이아몬드를 분리한 디자인이다. 기존엔 금이나 백금으로 둘러쌌던 다이아몬드를 6개의 발(프롱)이 완전히 들어올린 형태로, 빛이 다이아몬드의 아랫부분까지 통과해 광채가 남다르다. 이후 티파니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루시다 링’ 등으로 혁신을 이어 갔다.

 

③ 옐로 다이아몬드 유색 다이아몬드는 1만 개 중 한 개꼴로 발견되는 희귀한 보석이다. 티파니는 서호주 엘렌데일 광산과 독점공급 계약을 맺고 패션 주얼리에도 사용했다. 일반 다이아몬드보다 1.2~1.5배 정도 비싸고 2캐럿 다이아몬드는 1억원 수준.

 

④ 아틀라스 1853년 티파니 본점에 설치한 거대한 ‘아틀라스’ 시계는 2.74m(9피트) 크기의 ‘거인신’ 아틀라스가 지름 1.22m(4피트)의 둥근 시계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티파니는 아틀라스 신과 로마숫자, 창립연도인 1837 등에서 모티프를 얻은 시계·반지를 만들어 이를 기념한다.

 

인권 침해국의 보석은 사용하지 않아

 

① 노 블러드 다이아몬드, 노 더티 골드 보석업은 전쟁이나 노동력 착취, 환경 파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티파니는 불법적이거나 비인권적 과정으로 생산된 보석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편다. ‘인권침해국’인 미얀마산 루비는 구매하지 않고 있다.

 

② 산호 보존 캠페인 2002년부터 산호를 사용하지 않는 한편 해양생태계 보존을 위한 비영리 조직인 ‘시웹’과 협력해 ‘투 프레셔스 투 웨어(착용하기엔 너무 귀한 산호)’라는 캠페인도 벌인다.

 

③ 재생용지 카탈로그 용지의 95% 이상이 재생용지이고, 쇼핑백엔 분해성 플라스틱 필름을 사용한다.

 

④ 스포츠 진흥 티파니는 1860년부터 메이저 스포츠 경기의 우승 트로피를 제작했다. 1888년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 베이스볼부터 미국프로풋볼(NFL), 미국테니스협회, PGA 투어 챔피언십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경기의 우승 트로피가 티파니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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