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 브랜드 스토리

2011. 4. 12. 10:26브랜드스토리

아디다스 브랜드 스토리

 

회 사 명 : 아디다스코리아

대 표 자 : 지온 암스트롱

창 립 일 : 1998년 10월 1일

주 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2동 1321-1호 삼성생명서초타워9층

런칭년도 : 1996년

복 종 : 스포츠

조 닝 : 일반스포츠

전개형태 : 직진출브랜드

컨 셉 : 80여년의 스포츠 역사와 함께 성장한 아디다스는 최첨단의 테크놀로지 개발과 세계 최고 선수와 팀을 후원하여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소프츠 리딩 브랜드

가 격 대 : 팬츠 : 40,000 ~ 70,000원 점퍼 : 80,000 ~ 200,000원

신발 : 30,000 ~ 250,000원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에 한명의 구두수선공이 있었다. 아돌프 다슬러(Adolph Dassler)라는 이 조촐한 구둣가게의 아들은 후일 스포츠 신발과 의류에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가 되는 아디다스를 만들게 된다.

 

아돌프의 애칭은 아디(Adi)였다. 1900년에 태어난 아디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차대전 이전의 독일에서 성장했고 어려서부터 가내수공업으로 실내용 슬리퍼를 만드는 일을 가족들과 함께 했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였다. 아디의 여동생은 못쓰는 군용 배낭을 잘라 분필로 무늬를 그렸다. 아디는 여기에 접착제를 칠하고 서로 맞붙여 꿰매고, 밑창을 만들어 못을 박아 신발을 완성시켰다. 이렇게 구두 만드는 일을 한지 몇 해가 지나고, 아디 다슬러는 10대가 지나기 전 구두상인 조합에서 본격적인 구두제작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열정적인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다슬러는 불과 20세였던 1920년에 이르러 운동화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이미 신발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그는 얼마 뒤 축구화와 테니스화, 육상화의 제작도 병행하게 되었다. 안전성과 성능 모두를 향상시키기 위해 다슬러는 그만의 실제 스포츠 경험에 의사와 트레이너와 코치, 그밖에도 운동선수들의 조언을 더하여 독창적인 신발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의 관록이 성장함에 따라 그가 만든 신발에 대한 평판 역시 따라서 올라가게 됐다. 얼마 뒤 다슬러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신발은 1928년에 열린 9회 암스텔담 올림픽에서 최초로 대표선수들의 발에 신겨지게 되었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의 선수들의 축구화 모두를 직접 제작했다.

 

운동선수들의 위대한 기록 뒤에는 다슬러와 그의 작품들이 활약을 했던 경우가 많았다. 제시 오웬즈가 1936년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했을 때 그의 발에는 아디다스의 트랙슈즈가 있었다. 또한 아민 해리는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한 최초의 육상선수였는데 그 기록 역시 아디다스가 함께 했다.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축구화는 최초로 주물로 만들어진 고무 징이 달린 축구화를 생산하였다. 그리고 이후 아디다스의 상징이 된 3선 무늬가 적용되었다. 독일축구 대표팀은 아디다스의 새 축구화를 신고 1954년 월드컵을 거머쥐게 된다. 스크류방식의 징이 박힌 이 신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끄러짐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어 선수들의 기술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밖에도 수백 개의 세계기록과 올림픽 메달, 월드컵 승리의 한 켠에는 아디 다슬러의 일생에 거친 노력의 산물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운동용 신발을 만든 다슬러의 목표 중 한 가지는 각각의 스포츠 종목의 요구에 맞는 특화된 신발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슬러가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무려 700건의 특허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가 고안한 스포츠 신발 관련 특허의 긴 목록에는 지금은 너무나 보편화 된 나일론 깔창과 육상 스파이크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어떤 소재를 접하던지 만들고자 하는 신발의 기능을 어떻게 더 향상시키고 진보할 수 있는지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심지어 다슬러는 상어의 가죽을 가지고 깔창을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캥거루의 가죽을 신발의 옆 보강재로 덧대어 보기도 했다.

 

운동선수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주의 깊게 경청하는 다슬러는 신발을 디자인 할 때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고려하였다. 금메달이나 세계기록, 또는 운동에서의 개인적 성취는 모두 아디의 발명에 대한 노력과 다슬러의 신발이 제공한 뛰어난 성능에 기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다슬러의 천재적인 작업 결과를 인정한 ‘미국 스포츠용품 산업협회’는 1978년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추서했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그가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아디 다슬러는 1959년 60세를 일기로 고인이 됐지만 세상은 그를 현대 스포츠용품 산업의 선구자로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현재 다슬러 일가는 저마다 아디다스의 제품들을 디자인하거나 생산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아디 다슬러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진화하는 운동선수들의 요구에 세심하게 부응하면서 아디다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디다스는 스포츠 과학기술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소재들을 신발과 의류에 적용시켜 성능과 안전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 역시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하고 있다. 또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은 아디다스 제품들의 우수한 품질을 운동선수들과 일반인들에게 최대한 뚜렷이 전달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시간과 기술이 바뀌었어도 80년 역사의 아디다스가 추구하는 목표는 설립자 아디 다슬러가 지향해온 것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스포츠 브랜드가 되는 것” 아디다스는 최고의 자리에서도 이 목표를 향해 지칠 줄 모르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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