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돌과 정자의 문화유적

2006. 8. 20. 08:09내고향강진의 향기

선돌과 정자의 문화유적 2005.04.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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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Sites of Menhir and Bower

 

 농경문화가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천 지역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30여기의 지석묘가 있다. 더불어 산성터나 고분 등의 유적은 이 곳 작천 지역이 풍부한 농경문화 속에서 선사문화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하당마을의 률정(栗亭-밤나무가 많은 동네엿다고 함)

 

 작천면의 유학은 향교를 비롯한 관학에 의한 발달보다는 낙향한 명사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사학의 발달이 이루어 졌다. 조선 단종대에 한성판윤을 지냈던 남양인 홍구서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던지고 박산으로 낙향하여 지방의 유생들과 학문의 교류가 이루어진 것이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이후 작천 지역의 유학은 크게 번성하였고 유학의 영향을 받은 충신, 효자, 열녀가 연이어 배출되었다.

 작천은 유달리 선돌이 많다. 선돌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인데 군자리나 갈동리, 교동이나 밝뫼(박산) 등 면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러한 지석묘의 영향 때문인지 유달리 왕릉처럼 거대한 분묘들이 많다. 그것은 절하나 없이 사당이며 서원이 많고 일찍부터 성리학이 발전한 유학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작천면 소재지의 은행나무와 정자

 

 작천은 정자문화가 발달한 고장이다. 거의 모든 마을엔 정자와 대대로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처럼 우뚝 버티고 선 정자나무들이 있다. 이러한 정자나무 그늘에선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번영과 발전 그리고 부락민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신명나는 농악놀이로 한 판 굿을 벌이기도 하는 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