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허영의 시장’

2006. 8. 23. 08:04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오후여담>‘허영의 시장’

‘짝퉁 소유 뻐기기’를 애교로 봐주려는 한국인들이 요즘 단단 히 화가 나 있다. ‘짝퉁’은 ‘짝퉁 값’을 받아야 하는데 ‘진짜 명품’으로 둔갑해 어마어마한 돈을 소비자들로부터 후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10만원짜리 빈센트 손목시계를 수천만원에 판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전면 수사에 나서고 있으나 소비자들의 분노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이게 모두 ‘허영의 시장’에서 날뛴 죄값이려니 체념하면 별 문제 없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허영의 시장(The Vanity Fair)’은 찰스 디킨스와 함께 19세기 영국문학을 대표한다는 윌리엄 새커리(William M. Thackeray)가 1847년에 쓴 소설이다. 결혼을 잘 하여 일생을 편하게 살려는 두 여자의 인생행로를 그린 세태 고발 소설이자 영국 상류사회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명작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은 남편을 독살하고 그 재산으로 귀부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

이 소설 제목 ‘허영의 시장’은 17세기 영국 소설가 존 버니언(John Bunyan)의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s Progress)’에서 따 왔다. ‘천로역정’은 버니언이 1678년에 쓴 종교적 우 의(寓意)소설이다. 우의소설은 다른 사물에 빗대어 은연중 어떤 의미를 넌지시 비춘 소설이다. 순례길에 나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하늘의 도시(천성)’에 도달하는데 중간에 ‘허영의 시장‘을 지나게 된다.

‘허영의 시장’에서는 온갖 것을 사고 판다. 소설에 등장한 ‘ 상품’을 보면, 주택, 토지, 지위, 명예, 승진, 직위, 나라, 왕 국, 욕망, 쾌락 등이 있다.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내, 남편, 자녀, 주인·하인, 생명, 피, 육체와 영혼까지 상품으로 등장한다. 또 허영의 시장에서 득실대는 인간들 가운데는 요술사, 협잡꾼, 도박꾼, 놈팡이, 바보들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그 시절 에 이미 게임(games), 플레이(plays)까지 언급되고 있다.

한국판 ‘허영의 시장’에도 없는 게 없다. 장신구류에서 의약품까지 만물 백화점이다. 최근엔 대낮에도 성인 오락실에 틀어박혀 공돈을 벌 허영심으로 게임오락을 하고 있다. 그런 전자 기계를 만들어 판 사람, 그런 영업을 허가한 사람들도 모두 ‘허영의 시장’의 주인공들이다. 가짜명품을 찾는 과시(誇示)소비욕을 탓하기에도 지친 지금 권력형 부정의 냄새까지 풍기는 도박 열풍이 부는 이곳은 진정 ‘허영의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