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3. 23:57ㆍ내고향강진의 향기
강진이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점은 전라 병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호남 지역의 육군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이 병영성은 여러분도 한 번쯤은 들었을 「하멜 표류기」의 네델란드인 하멜이 1653년 여름 제주도에서 표류하다 일행 전체가 3년 후 병영성으로 옮겨져 왔다. 그 때의 나라 사정이 뻔한 것인지라 그들 또한 노동으로 하루하루 연명하다 급기야 여수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7년 동안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의 고난한 생활을 마감했다.
지금도 병영에는 그 옛날 화려했던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돌담길과 노송들이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이 발달된 상권 또한 병영성과 하멜일행과 관계가 있을 것이리란 얘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병영에는 유명한 한정식 집이 있다. 수인관, 설성식당이 그 중 으뜸으로 유명하다. 1700년대 병영에서는 개성에서 발행된 어음까지 주고 받은 걸로 봐서 병영의 상인이 전국적인 활동을 했음을 보여 준다. 지금 강진군과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병영성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병영에 가면 무지개다리의 병영홍교가 있고, 인근에 KBS 인기 프로그램 스폰지에도 나왔던 ‘와보랑께 박물관’이 있다. 옛 추억이 가득한 각종 교육 관련 교구며 우리 조상들의 생활 용품을 김성우 관장이 평생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민박도 가능하다. 관장님의 소묘 솜씨는 일품일뿐만 아니라 전라도 탯말에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꼭 한 번 들러 구경했으면 하는 곳이다.
병영에 가면, 수인산이 있다. 수인산 정상에는 산성이 있는데 고려 때 축조되었다고 전해오는 이 성은 아직까지 병사들이 사용했던 우물터와 여러 가지 생활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동학운동과 일제 침탈기를 거치면서 수인산성은 의병들의 의로운 정신을 찾아 볼 길이 없을 만큼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전라남도 지방기념물이라고 하나 안타깝기 그지없는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수인산 정상에 오래전에 오른 적이 있다. 이제는 멀리 한라산 정상까지 보였다는 수인산(561미터)만이, 쓸쓸하게 너른 들녘을 지키고 있다.
병영을 지나면 토하(민물 새우)로 유명한 친환경특구로 지정된 옴천면이 나온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토하젓은 전국 제일로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지역과 관련한 우스개 소리가 있다. 면지역의 인구와 지역 규모가 작은 것을 두고 강진 사람들은 ‘옴천면장하느니 목리 이장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옴천은 환경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환경 농업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 지역을 방문하면 특산물을 맛 볼 수 있고, 직접 구입할 수도 있다.
병영에서 장흥 쪽으로 나와 다시 강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사인정이 나온다. 사인정 부근에 최근에 동양에서 가장 큰 청동불상이 있는 남미륵사라는 절이 있다. 가보지 못했지만 우선 그 큰 규모가 궁금하다. 들은 바로는 높이 36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한 번 쯤 들러 구경하는 것도 좋겠다. 바로 이 남미륵사가 있는 길 건너에서 강진만으로 이르는 긴 강이 탐진강인데 물이 맑아 은어가 유명하다. 아직도 그곳에서는 매년 여름휴가철에 ‘탐진강 은어축제’를 열고 있으며, 살이 통통한 탐진강 맑은 물에서 자란 은어의 깊은 맛을 볼 수 있다. 탐진강 은어 축제가 열리는 곳은 군동면 석교와 덕천으로 가는 탐진강 생태공원이다. 매년 광복절 전후로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고 남도의 별미를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석교를 지나 강진만의 구강포 쪽으로 내려오면 강진에서 제일 유명한 목리장어집이 있다. 옛날에는 구강포와 탐진강물이 합해지는 풍천에서 자란 자연산 장어로 요리를 해서 가격이 비싸서 군단위 기관장급 지역유지들만 애용하던 식당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강진의 맛을 고루 경험하고 싶으신 분이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강진읍내로 들어오면 앞서 말했던 영랑생가 외에도 강진향교, 강진읍성 등이 있으나 다산의 향기를 느끼고자 하는 분이면 강진읍에서 우두봉 자락에 있는 고성사까지 올라 갈 일이다. 보정산방. 이 작은 암자에서 다산 선생의 초기 어려웠던 유배생활의 애환을 회상하시기 바란다. 산에서 내려오면 군청 밑에 남도 한정식으로 한 때 유명세를 탔던 해태식당, 명동식당, 흥진식당 등 한정식집이 즐비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과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음을 3년 전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들 집은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호남의 풍부한 해산물과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단골로 소개되는 곳 하나를 추가하면 고풍스런 기와집으로 새롭게 문을 연 청자골 종가집 한정식 집이 있다. 강진읍내에서 군동면 쪽 종합운동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이다. 주차장이 넓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서비스가 도회적이다. 다른 집보다 가격이 그래서 비싼 것인지 모르지만 홍어삼합과 온갖 육해공군의 풍미를 두루 맛 볼 수 있다.
요즘 한 참 뜨는 드라마 주몽을 보면 소금이 얼마나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던 소금. 소금은 국민들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우리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랑하는 김치가 그렇고 각종 장아찌류의 반찬들이 그렇다. 강진에서는 이러한 우리 음식문화의 원형을 고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의 젓갈과 묵히고 삭힌 갖가지 음식들. 그 깊고 풍부한 맛 속에서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의 소중한 전통을 느끼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의 식생활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겸상이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겸상이라는 것은 한 상에서 여럿이 밥을 함께 먹는 것을 말한다. 본래 우리 전통은 외상(독상)이라고 한다. 아직도 안동에서는 그 외상의 전통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는 데, 한 사람마다 한 개의 밥상을 받았던 것이 본래 우리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노동력의 부족과 기근 등 식량부족의 영향에 따라 밥상 하나에 여러 식구가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겸상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완성된 시기는 대개 조선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은 모든 음식에 과학적 원리와 건강을 고려한 점은 세계적이다. 전통 장 담그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과학적 원리, 때를 맞추어 먹는 각종 보양식과 의례 음식들.(떡국-설, 화전-삼짓날, 송편-추석, 팥죽-동지, 수정과-섣달그믐, 유두면-유두, 밀국수-칠석, 삼복-개장국, 삼계탕 등)
그러면 한정식은 어떤 음식인가? 본래 한정식의 기원을 궁중 음식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옛날 임금님이 먹은 상을 몇 번에 걸쳐서 하급 관리까지 가는 데 무려 4시간이 걸렸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남은 음식을 나누어 먹던 풍습이 궁 밖으로 전해지면서 반가에서 한정식의 전통으로 완성되었던 것이 아닌가 식품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과정을 봉송(封送)이라 한다는군요. 즉, 임금님이 양반들에게 음식을 하사하는 것을 이르는 것인데 임금으로부터 음식을 받은 양반은 꾸러미를 만들어 또 서민들에게 전달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정식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데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한정식이 발달한 것은 일제강점기 요정 문화에서 완성된 것이라고 하니 한정식 한 가지 속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우리 전통과 아픈 역사가 함께 있군요.
대충 남도답사 일 번지 청자골 강진 여행을 마치지만, 이것들 말고도 너무나 많은 문화유산이 있다. 남도의 원형질이 가득한 보고로서, 호남 음식의 자부심으로서 강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봄날 원색의 물결로 넘쳐나는 추억의 보리밭 사이, 여름날의 강과 바다, 가을에 보는 무위사의 고즈넉한 단아함 그리고 겨울의 눈 속에 느끼는 영랑의 시심 등 아직도 많은 얘기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남도답사 일 번지. 이제 직접 여행을 떠나시지 않으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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