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3. 23:59ㆍ내고향강진의 향기
1656년 네덜란드인 36명 표류
강진 병영성등서 13년간 억류
#하멜
일행이 쌓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강진 병영성 주변의 마을의 골목담.
이곳 사람들은 '빗살무늬' 담으로 부른다. 네덜란드식이라고 말한다.
1653년 8월 15일 제주도 해변.
그 해 정월 10일 밤 네덜란드를 출발했던 스페르웨르(Sperwer)호가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았다. 배는 제주도 해안에서 좌초되었다. 네덜란드인 64명중 28명이 죽었다. 36명은 뭍으로 올랐다. 생존자중 한 명이 그 유명한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이었다.
이들은 이듬해 서울로 호송되었다가, 1656년 다시 전라도 병영성에 감금되었다. 1663년 2월 여수 좌수영 등 세 곳으로 분산되었다.
여수 좌수영에 있던 하멜 등 8명은 1666년 9월 탈출, 일본을 거쳐 166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 13년간의 조선억류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속했던 동인도회사에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서 써낸 보고서가 ‘하멜표류기(蘭船濟州島難破記)’다. 이 책으로 조선이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하멜 일행에게 조선정부가 취한 조치는 그야말로 억류이상의 것이 없었다. 서양세계를 탐색하기 위한 관심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키(데지마)를 네덜란드에 개방, 제한적이지만 서방과 교류하는 숨통을 열어 놓았다. 그래서 서양정보를 획득해가며
대외 개방분위기로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 이후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청세력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 뿐
아니라 자족적 질서에 안주하며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은 도통 없었다. 표류해온 서구인들은 외부세계를 접촉할 수 있는 우연적 기회였다. 그 우연은
포르투칼, 네덜란드 등이 이른 바 ‘대항해’를 시작하며 세계 각지의 경영에 나서던 흐름 속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하멜의 책은 서구세계에 조선의 존재를 알렸지만, 그것은 이후 수백년간 서구열강들의 조선에 대한
침탈의 욕구를 북돋아준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은 그 숨통이 계기가 되어, 조선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다른 요소도 많지만, 어쨋든 역사적 결과는
조선은 식민지가가 되었고,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강진 병영성에는 독특한 네덜란드식 담벽과 은행나무 등 하멜 일행의 흔적이 남아있다. 강진군이 인터넷 사이트
‘하멜 캡슐(www.hamel.go.kr)’을 지난 19일 개통했다.
오늘날 하멜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캡슐’이라면, 바로 “세상을 자기 눈으로만 보지 말라. 그래서 그르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라”는 교훈일 것이다.(권경안 글)
'내고향강진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데일리안]강진청자판매 갈수록 인기 (0) | 2006.08.24 |
---|---|
[스크랩] <2006 남도공예문화 축제>강진서 열려 (0) | 2006.08.24 |
[스크랩] 아름다운 능선, 장흥 수리봉에서 강진 수인산까지 (0) | 2006.08.23 |
[스크랩] 강진 `와보랑께박물관`-옛날 물건 가득 (0) | 2006.08.23 |
[스크랩] 천리 길 끝에서 만나는 남도의 향기, 강진의 아름다움 속에서 (0) | 2006.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