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같은 금융회사 만들어야

2006. 10. 1. 13:35나의 취재수첩

삼성전자 같은 금융회사 만들어야
한미FTA, 우리 금융산업 도약의 기회 제공
  2006-08-28 12:59:38 입력
엑손모빌, 도요타, 화이자, 월마트….

미국의 격주간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세계 500대 기업(매출액 기준)으로 꼽는 회사들 가운데 100억 달러 넘게 이익을 내는 지구촌의 경제 강자들이다. 이들 “100억 달러 클럽” 회원 10여 개 사 중 금융회사인 씨티그룹, HSBC,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우리나라에도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으로 “100억 달러 클럽” 문턱에 도달한 회사는 삼성전자(이익 94억 달러)가 유일하다. 만약 우리가 금융산업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를 보유할 수 있다면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라는 우리의 염원은 그 실현을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호된 어려움을 겪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 그리고 위험관리능력 개선과 같은 소프트웨어 개혁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고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위기로 국가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아픔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얻은 것 가운데 하나는 금융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지난 1960, 1970년대 우리 금융회사는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지원자 역할에 모든 것을 걸었고, 정부도 각종 규제를 통해 인위적 여건을 조성했다. 그러나 우리 산업구조가 점차 고도화하고 시장이 개방되면서 실물부문 지원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건전성과 경쟁력이 부족한 금융산업은 국가경제의 잠재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제는 원활한 자금 중개는 물론 돈도 잘 버는 금융회사가 많아야 한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금융산업의 자금중개 기능과 국제 경쟁력 확보를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 보완적 관계로 파악하는 균형감을 가지고, 그간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금융산업의 전략적 육성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이며, 타 산업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금융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경제 선진화 달성의 주요 관건이다.    

금융기관이 밀집된 서울 시내 전경.

금융산업 발전은 우리 경제 선진화 달성의 주요 관건

우리 금융산업은 그간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은행권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외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곧바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진정한 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의 국제 경쟁력을 결정하는 내·외부 역량(Skill), 규모(Scale), 사업범위(Scope)에 있어 글로벌 플레이어와의 사이에 격차가 존재한다면 강자 대열에 들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격차를 어떻게 메울까.

금융회사는 인적자원이 경쟁력의 핵심(Core Competence)이다. 금융업은 삼성전자처럼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이 아니다. 금융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 그리고 이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따라서 금융회사 스스로 이를 확보하기 위해 과감히 사람에 투자해야 하며, 성과주의 문화 정착 등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진적인 위험관리와 상품개발 능력을 조직문화로서 체화할 필요가 있다. 선진 역량 배양이라는 목표가 임직원의 행태와 사고에 속속들이 내재화되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시스템 내실화를 기하는 한편 글로벌 경영 전략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글로벌 투자자와의 네트워크 구축, 해외시장에의 전략적 진출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글로벌 금융 강자라는 우리 희망은 희망에 머물고 만다. 이와 관련하여 포화된 국내시장에서 해외로 눈을 돌려 성공한 네덜란드의 ING, 호주의 맥쿼리 등 외국 금융회사의 사례는 시사적이다.

정부도 장기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금융산업 육성에 임해야 한다.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자본시장통합법은 궁극적으로 금융시장 통합법 제정을 통해 금융시장의 빅뱅을 이루려는 작업의 전초단계다. 그런데 만약 자본시장통합법이 영역 간의 지엽적 이익다툼에 매몰되어 지연된다든가, 장기적 비전을 담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나라 금융산업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건전성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유지

규제완화에 대한 환상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감독당국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건전성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견지해 나가되, 불필요한 영업규제는 완화해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완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규제의 합리성과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확보해 나가는 일이다. 앞으로 감독당국은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권역별 장벽을 허무는 등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규제 및 제도 변화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1969년 흑백TV를 내놓으면서 출범했을 때 그로부터 30년 후 지금과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회사가 1973년 부도난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당시에는 사업 확장을 말리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우리나라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고 관련 산업이 빈약하다는 것과 함께, 기술적 후진성과 열악한 사회 간접자본이 그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삼성은 철저한 시장분석과 국제경제에 대한 경영감각을 바탕으로 “준비된” 모험(Risk Taking)을 감행함으로써 30년 뒤 거대한 결실을 맺고 있다. 물론 삼성의 성공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함께 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글로벌 경제의 강자는 오랜 인내와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종합 예술”을 통해 탄생함을 우리는 삼성의 사례에서 경험했다.

FTA에 대한 적극 대응으로 최대한의 편익 창출해야

지금부터 장기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노력한다면 30년이 아니라 10년, 20년 안에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금융회사를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 금융회사 CEO 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특히 금융회사 CEO는 명확한 장·단기 글로벌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조직 구성원 모두와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씨티그룹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플레이어를 지향할 것이냐, 아니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처럼 특정 분야에 특화된 국제적인 전문 금융기관(International Monoline)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싱가포르의 DBS은행처럼 동아시아를 집중 공략하는 국지적인 선도 금융회사(Regional Powerhouse)를 벤치마킹할 것이냐를 놓고 금융회사들은 처절하게 고민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우리 금융회사는 국내 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와 진검승부를 벌여야 함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들과 힘겹게 싸워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 금융산업에도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은 금융회사가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FTA에 대응함으로써 최대한의 편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적인 접근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공은 그 기쁨을 누려본 자만이 계속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정보기술(IT) 등 몇 분야에서 국제시장을 경악시키며 대단한 성과를 이룩한  경험이 있다. 일단 한 번 해 본다는 식의 막연한 도전이 아니라 철저한 시장분석과 장기 전략수립을 통해 “준비된” 도전을 차근차근 추진한다면 대한민국이 “금융으로 먹고 사는” 금융부국으로 우뚝 설 날도 결코 멀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냉엄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란 없다는 사실이다.
김서중 기자(ipc00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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