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서 책 500여권 집필
2006. 10. 11. 21:51ㆍ내고향강진의 향기
2006년 10월 11일 (수) 15:23 문화일보
다산초당서 책 500여권 집필
강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다산초당.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오솔길에 서면 한 시인의 시 구절이 마치 선연한 그림처 럼 떠오르곤 한다.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우두봉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중에서
다산 정약용은 누구도 찾아오기 힘들었을 변방의 궁벽한 해안마 을 강진에 유배돼 무려 18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강진에서의 유 배생활은 한 인간에게는 가혹한 형벌이었겠지만, 유배의 고통 속에 그가 이룩한 학문적인 업적은 세상을 변혁하게 하는 정신적 유산이 됐다. 다산이 유배 중 써내려간 500여권의 책이 바로 그 것을 말해준다. 다산이 18년의 강진 유배기간 중 1808년 봄부터 1818년 9월까지 10년을 기거했던 다산초당은 야트막한 만덕산 기슭 에 있다. 다산초당이야, 누구나 다 아는 남도여행의 관광포인트. 강진이 관광객들에게 내세우는 ‘남도답사 일번지’란 구호도 다산초당이 있기에 비로소 당당하다. 만덕산 산길을 꾹꾹 눌러가며 걸어 다산초당 앞에 서서 유배된 정약용이 겪었을 외로움, 그 리고 고독 속에서 이뤘던 학문적 성취를 떠올리면 애잔해진다. 초당에서는 좀처럼 넉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배시절의 초가가 아니고, 번듯하고 근엄하게 새로 지어진 기와집이라 그럴까, 아니면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은 숲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추위와 외로움에 떨며 차를 달였을 다산의 짙은 외로움의 그늘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번듯한 기와로 단장한 초당보다 오히려 강진만을 굽어보는 자리에 세워진 정자 천일각에 더 눈 길이 간다. 1978년에 지어진 천일각은 생전의 다산과는 전혀 관 계가 없는 곳. 그러나 생전의 다산은 천일각이 서있는 그 자리쯤에서 강진만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울의 기별이 그립거나 약전 형님의 안부를 그리워했을 터. 서투르게 복원된 번듯한 기와집보다는 오히려 천일각에서 다산의 향기가 더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우두봉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중에서
다산 정약용은 누구도 찾아오기 힘들었을 변방의 궁벽한 해안마 을 강진에 유배돼 무려 18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강진에서의 유 배생활은 한 인간에게는 가혹한 형벌이었겠지만, 유배의 고통 속에 그가 이룩한 학문적인 업적은 세상을 변혁하게 하는 정신적 유산이 됐다. 다산이 유배 중 써내려간 500여권의 책이 바로 그 것을 말해준다. 다산이 18년의 강진 유배기간 중 1808년 봄부터 1818년 9월까지 10년을 기거했던 다산초당은 야트막한 만덕산 기슭 에 있다. 다산초당이야, 누구나 다 아는 남도여행의 관광포인트. 강진이 관광객들에게 내세우는 ‘남도답사 일번지’란 구호도 다산초당이 있기에 비로소 당당하다. 만덕산 산길을 꾹꾹 눌러가며 걸어 다산초당 앞에 서서 유배된 정약용이 겪었을 외로움, 그 리고 고독 속에서 이뤘던 학문적 성취를 떠올리면 애잔해진다. 초당에서는 좀처럼 넉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유배시절의 초가가 아니고, 번듯하고 근엄하게 새로 지어진 기와집이라 그럴까, 아니면 대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은 숲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추위와 외로움에 떨며 차를 달였을 다산의 짙은 외로움의 그늘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번듯한 기와로 단장한 초당보다 오히려 강진만을 굽어보는 자리에 세워진 정자 천일각에 더 눈 길이 간다. 1978년에 지어진 천일각은 생전의 다산과는 전혀 관 계가 없는 곳. 그러나 생전의 다산은 천일각이 서있는 그 자리쯤에서 강진만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울의 기별이 그립거나 약전 형님의 안부를 그리워했을 터. 서투르게 복원된 번듯한 기와집보다는 오히려 천일각에서 다산의 향기가 더 짙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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