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당신을 소환합니다 자주 열지 않는 서랍에서 사용한 지 오래된 아내의 입을 발견했다 눈물을 말려 접은 아흔아홉 마리 학의 날개가 이따금 퍼덕거렸다 건기와 우기의 몸으로 낮에는 시든 발목에 물을 주고 밤에는 구름을 꺼냈다 새가 날아들지 않은 날은 이리저리 어깨를 옮겼..
구석과 모퉁이 사물들을 가만 살펴보면 구석과 모서리가 있다. 어디 사물뿐이겠는가. 어둡지만 아늑하게 숨은 공간이 있다면, 밝게 열려있는 공간도 있다. 어떤 대상이든 한쪽 면만으로 다 알 수 없다. 양면을 다 알아야 진면목이 보인다. 안과 밖을 모두 알아야 비로소 오해와 편견은 멀..
견고한 틀을 깨고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헤세 이대로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을 수..
마음이 무엇일까? "엄마, 마음이 뭘까요?" 아들이 묻습니다. "글쎄, 마음이 무엇일까?"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마음. 마음은, 마음에 대해 말을 해야 할 때마다 당혹감을 느낍니다. 마음은, 가장 귀하고 중요한 깨달음의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며 ..
단풍 가을은 중년의 계절인가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질수록 산은 밤새 뒤척이고 흐르는 냇물 소리 더욱 맑게 들리고 지난 푸르던 시절 지나치고 온 길가에 억새는 어느새 새치처럼 하얗게 피어있고 세월 갈피 속에 밤새 밑줄 그어놓았던 이야기들 단풍으로 산자락에 붉게 물들어 있다 ..
바나나는 등이 가려울 때 열린다 바나나는 등이 가려울 때 열린다 손이 닿지 않는 그곳은 습한 열대 그는 돌아앉았던가 허리를 굽혔던가 바나나는 그때마다 다른 음으로 흔들리고 익는다 매달릴 때마다 하나씩 없어지는 저 손가락 - 최인숙, 시 '바나나' - 줄에 걸어놓은 바나나가 익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