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법 처리 무산으로 대학 큰 혼란

2007. 5. 11. 14:13지적재산권 보호활동뉴스

로스쿨법 처리 무산으로 대학 큰 혼란
"법조인을 희망하는 수많은 학생의 인생계획이 유예되고 있으며 로스쿨을 준비하고자 수천억원을 투자한 대학들은 국회를 원망하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법조인의 전문화 및 법학교육의 국제경쟁력 강화는 이제 발등의 불이 됐다. 국회는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분명히 자각하고 국민의 대표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법학전문대학원법)이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하자 전국 법대 학장협의회가 발표한 성명의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 개혁을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법은 정부가 이미 2년 전인 2005년 10월에 국회에 제출한 법안이다. 국회제출시기를 넘어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은 법학교육 정상화와 법률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안으로 1995년부터 개혁안이 제시됐다. 이후 정부, 시민단체, 법조계, 국회 등에서 10년이 넘도록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는 이뤄진 상태다.


당초 2005년 정기국회를 통과하고 2008년 3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국회교육위원회에서 2006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률안 쟁점사항을 합의하고도 사학법 재개정 연계 방침에 의결을 보류한 이후 제도도입시기를 2008년 3월에서 2009년 3월로 미뤘다. 1년이 지났지만 똑같은 이유로 법학전문대학원법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10여 년의 사회적 합의가 무색해진 것이다.

법안 통과 지연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험생과 대학의 혼란

법안의 국회통과가 미뤄지면서 이를 준비하는 수험생과 대학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우선 법조인을 꿈꾸는 고등학생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제도도입시기, 설치대학과 법조인 선발계획이 미뤄지면서 대학진학결정에 혼란을 초래한다.

정부안이 법학전문대학원 신입생의 1/3을 타대학·타학과 출신을 뽑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면 학부는 관심분야로 진학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전문변호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법안이 무산될 경우 법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지름길이 된다.

대학생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미리 군대를 다녀와야 할지, 아니면 대학원에 입학해야 할지, 차라리 시기가 늦어져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다. 특히 법대 1, 2학년 학생들의 경우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결정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다.

2000억원 이상을 들여 건물과 기자재를 확보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대학 당국도 국회의 법률통과에 목을 매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논의가 본격화된 2004년부터 전국의 40개 국·사립대학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위해 ‘법학전문도서관’, ‘모의법정’을 마련하는 등 건물 신·증축과 기자재 구입에 2000여억원을 쏟아 부었다.

또 교수 1인당 학생 수 15명 이하, 전임교원 20인 이상의 설치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전임 교수도 대거 충원한 상태다. 앞으로도 이들 대학들은 시설설비에만 2000억원 가까이 투자할 계획을 세워 하루빨리 법학전문대학원 대상 대학을 선정해 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준비중인 대학의 건물 및 기자재 투입 현황. 단위 백만원.

법학전문대학원법이 미뤄지면서 수험생의 혼란과 대학의 비용이 표면상 나타난 문제점이라면 고시낭인 방치, 파행적인 법학교육,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법조인 부족 등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법조인은 현재 대졸 전문직 가운데 외국어 능력이 최하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법에 의한 민·형사 분야 송무 전문에 몰리고 국제법 분야는 대단히 취약하다. 한 언론사가 자산기준 상위 30대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가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국제거래를 외국 로펌에 맡기겠다고 답변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폐쇄적인 법조 문 열고 경쟁력 높이는 법학전문대학원법

법학전문대학원은 10여년 전부터 사법개혁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제기된 숙원과제로 ‘폐쇄적인 법조의 문을 열어 국민을 위한 사법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사법개혁의 핵심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은 현재의 사법시험제도를 폐지하고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 정원제인 사법시험제도를 절대평가제인 변호사 시험제도로 전환하고, 의사시험처럼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에 한해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기존 법학과 학생과 사법시험 준비생을 위해 한시적으로 사법시험제도도 병행한다. 공무원인 판사와 검사는 변호사 자격자 중에서 선발한다.

다양한 학부전공의 기초위에 전문적인 법률 교육을 한다는 취지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 설치하는 대학은 의무적으로 학사과정의 법학과를 폐지한다.

이처럼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 일회성 시험이 아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법조인이 양성되면서 법조문에 갇힌 편협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영학을 전공한 기업 전문 법률가, 공학을 전공한 지적재산권 전문가, 외국어 능력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국제법 전문가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위에 법학교육을 더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특화된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다.

또한 법학과, 사법시험으로 이어지는 법조인 양성체계에서 다양한 학부전공,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서 법조인이 되기 위한 파행적인 법학교육이 개선되고, 고등학교 졸업단계에서 우수인재가 집중되는 현상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법학전문대학원법, 백지화 위기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이 문을 열려면 2009년 입시 6개월 이전인 2008년 5월말까지는 대학에서 입학전형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되면 학부과정의 법학전공을 폐지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입학전형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여부를 최소한 2008년 3월까지는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법학전문대학원 설치를 결정하기까지는 법학교육위원회 구성, 총정원 협의, 인가기준 확정, 인가신청공고, 인가심사 등 최소한 7개월 이상 걸린다. 여기에 법안 통과 이후 시행령 제정, 공포 등 법의 요건을 갖추는데 만도 2개월 이상 소요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경우 6월 임시국회에서 법률안이 통과되면 대학별 입학전형계획 발표를 1개월 이상 늦춰야 한다.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을 1년 6개월 전에 공포해야 한다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험생과 대학의 혼란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다시 고개 드는 사법개혁 저지 움직임

법학전문대학원법의 처리가 늦춰지는 틈을 이용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주장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법조계를 비롯해 일부 의원들이 변호사수의 지나친 증대, 법학교육의 질 저하, 인문학 초토화 등을 이유로 법안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 확인된다.

우선 법학교육의 질 저하의 경우 현재는 법학 관련 과목을 35학점만 들으면 사법시험을 볼 수 있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 3년간 90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이 초토화될 것이라는 반대 논리를 세웠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은 학부 성적과 적성시험을 의무적으로 반영해 학부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오히려 학부시절부터 사법시험을 목표로 고시를 준비하는 현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인문학 교육을 더 황폐하게 한다.

인구대비 법조인 수. *기준 : 한국 ’02년, 일본 ’01년, 미국 ’00년, 영국 ’00년, 독일 ’00년, 프랑스 ’99년

반대논리 중에 가장 솔직한 표현이 ‘변호사수의 지나친 증대’다. 기존 법조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국가의 인구대비 법조인 수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서비스가 얼마나 법조인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법조인 1인당 국민 수는 5783명에 달한다. 그만큼 법률서비스는 높은 수임료를 유지하며 국민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미국의 법조인 1인당 국민 수는 266명에 불과하다. 영국도 557명, 독일도 578명 수준이다. 우리와 유사한 사법시험을 치러왔던 일본이 2001년 기준으로 5644명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미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들이 2006년부터 ‘신사법시험’을 통해 변호사로 입문하고 있다. 일본은 2010까지 사법시험 합격자도 3000명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